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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W 소개와 역사 
(closed)




* 경기 결과 모음

[1972년]
Parade of Champions


[1982년]

F. Von Erich Retirement Show
Christmas Star Wars


[1983년]

Independence Day Star Wars
Labor Day Star Wars
Thanksgiving Star Wars
Christmas Star Wars

[1984년]
Independence Day Star Wars
Labor Day Star Wars
Cotton Bowl Extravaganza
Thanksgiving Star Wars
Christmas Star Wars


[1985년]  

Independence Day Star Wars
Labor Day Star Wars
Cotton Bowl Extravaganza
Thanksgiving Star Wars
Christmas Star Wars

[1986년]
Independence Day Star Wars
Labor Day Star Wars
Cotton Bowl Extravaganza
Thanksgiving Star Wars
Christmas Star Wars

[1987년]

Labor Day Star Wars
Cotton Bowl Extravaganza
Thanksgiving Star Wars
Christmas Star Wars

[1988년]

Cotton Bowl Extravaganza 

* WCCW 소개와 역사


WCCW(World Class Championship Wrestling)는 텍사스 지역의 댈러스와 포트 워스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단체이다. 초창기 프로모터는 ED 맥르모어(Ed McLemore)였으나, 1996년에 사우스웨스트 스포츠(Southwest Sports)Inc.의 소유가 된다. 회사의 사장은 우리에게 프리츠 본 에릭(Fritz Von Erich)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잭 아드키슨(Jack Adkisson)이였다. 그들은 NWA 연맹의 회원으로 단체를 시작했고 1986년에 전국적인 메이저 단체로 끌어올리기 위해 독립적인 단체로 운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1990년에 WCCW는 문을 닫았다.

* 빅-타임 프로레슬링 [1966년-1981년]



 

1970년대 말까지 프리츠 본 에릭에 의해 운영된 빅-타임 레슬링(Big Time Wrestling)은 WCCW의 전신(前身)이였다. 댈러스 스포타토리엄(Dallas Sportatorium, 경기장)의 소유주였던 프리츠 본 에릭과 ED 맥르모어는 1966년에 댈러스/포트 워스 레슬링 오피스를 사들인다. 1969년, ED 맥르모어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프리츠 본 에릭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선수 생활을 병행했던 그는 (각본상)형제인 왈도 본 에릭(Waldo Von Erich)과 함께 악역으로 활동하다가 1966년말 선역으로 전환해 게리 하트(Garry Hart)같은 선수들과 대립을 가졌다. 당시에 프리츠의 라이벌 선수로: 죠니 발렌타인, 스탄 스태이지악, 토루 타나카, 알프레드 헤이즈, 더 시크, 브루저 브루디, 그레이트 가부키등이 있었고 와후 맥다니엘이나 호세 로타리오 같은 선수들도 빅-타임 레슬링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많은 선수들이 LA의 GOA(Grand Olympic Auditorium)레슬링 출신이었다.



 

프리츠는 1970년대 말, 자신의 아들들이 레슬링 경력을 시작하자 링 출연을 자제하고 단체 운영에 힘을 썼다. 그는 1982년에 텍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킹콩 번디와의 경기에 승리하여 NWA 아메리카 타이틀을 따낸후, 최종적으로 은퇴한다. WCCW로 이름을 변경 후, 단체는 프리츠의 아들들인 케빈, 데이빗, 케리 본 에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 절정기 [1982년-1985년]



 

WCCW로 이름을 바꾼 이후에 단체는 1시간 짜리 TV 방송용 쇼를 녹화하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으며 이것이 현대 프로 레슬링 프로그램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또한, 당시에는 처음으로 선수들이 등장할 시 인기 있는 록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WCCW는 크리스 아담스, 페이블레서 프리버즈, 제이크 로버츠, 믹 폴리, 숀 마이클스, 지노 헤르난데즈, 킹 파손스, 지미 필립스 등의 차세대 스타들의 등용문(登龍門)이기도 했다. 당시 그들의 프로그램은 텍사스 지역에서 미국에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또, WCCW는 화려한 오프닝 화면과 로고를 제작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 프리 버즈와 본 에릭스의 대립 [1982년]



 

당시 WCCW의 인사와 각본을 당당하던 게리 하트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프리버즈(Freebirs)와 본 에릭스의 대립"을 만들어냈다. 본 대립은 1982년 12월 25일, 댈러스의 리유니온 아레나(Reunion Arena)에서 열렸던 케리 본 에릭과 NWA 월드 챔피언, 릭 플레어의 경기 후 시작 되었다. 케리 본 에릭은 몇 차례 릭 플레어의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반칙이나 논란이 있을법한 심판의 판정으로 무산 되었다. 결국 그들은 아무도 개입하지 못하는 철창 경기를 내정했고 특별 심판을 팬 투표로 결정한다.



 

당시 본 에릭스에 의해 두 번째로 인기 있었던 프리버즈의 멤버, 마이클 헤이즈가 심판으로 선정. 또 다른 프리 버즈의 멤버, 테리 고디는 링 밖에서 철창을 지키는 역을 수행하게 된다. 프리 버즈는 케리를 도우려 하다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으로 경기를 노 콘테스트(No Contest)로 종료 시킨다. 이후, 본 에릭스와 프리버즈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텍사스 지역간의 팀을 대표한 이들의 대립은 현대 레슬링에 있어 가장 격렬했다고 한다. 이후에 각본을 총괄하던 게리 하트가 떠나자 프리 버즈 역시 WCCW를 떠나는 것을 고려했으나, 게리 하트의 만류로 무산 되었다.

* 데이빗 본 에릭의 사망 [1984년]



 

1984년 2월 10일, 본 에릭-프리버드 전쟁이 한참일 때, 막 일본(日本)에 도착한 데이빗 본 에릭이 급성장염(acute enteritis)으로 사망한다. 그의 사망은 댈러스-포트워스 메트로플렉스지(誌)의 일면을 장식했으며 "본 에릭 가족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데이빗 본 에릭은 형제 중에 프로 레슬러로서 가장 재능 있었기에 릭 플레어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 했다. 데이빗의 죽음으로 WCCW는 내부적으로 각본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했다.



 

1984년 5월 6일, 텍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데이빗 본 에릭 추모 경기에서 케리 본 에릭이 14분(分)의 혈투 끝에 릭 플레어를 이기고 최종적으로 NWA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하지만 얼마 후인 23일에 일본에서 열린 경기에서 타이틀은 다시 릭 플레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본 경기는 WCCW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지 않았다. 그들은 경기의 심판이 프로 레슬링에 대한 이해가 없던 스모 레슬링 관련인 이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프리버즈는 1984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WCCW를 떠나 1985년 12월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시기에 지미 가빈 같은 베테랑들은 AWA로 이적하기도 했다.

* 이스라엘 투어 [1985년]


1985년에 WCCW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투어를 갖게 된다. 8월 3일부터 - 8월 7일까지 진행된 텔 아비브(Tel Vivv)에서의 투어는 성공적 이였다. 하지만 투어 중에 마이크 본 에릭의 어깨가 탈골되어 독성 쇼크 증후군(toxic shock syndrome)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프리츠는 PNWC(Pacific Northwest Wrestling Champion)에서 케빈 버근(Kevin Vaughn)을 영입하는데, 그는 각본상 프리츠의 동생인 왈도 본 에릭의 아들: 랜스 본 에릭으로 소개 되었다. 랜스 본 에릭은 1985년 커턴볼(Cotton Bowl) 이벤트에서 데뷔를 한다. 그는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었으나 레슬링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모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본 에릭 가족과의 갈등으로 타 단체 이적을 했다. 1985년 말에는 돌아온 프리 버즈와 본 에릭스의 대립이 다시 시작 되었다.


* NWA와의 결별 [1986년]



 

1986년 2월 4일, WCCW의 스타였던 지노 헤르난데즈(Gino Hernandez)가 그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팬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당시 NWA의 회장이었던 짐 크로켓 주니어는 더 이상 NWA 월드 챔피언이 텍사스 지역에서 경기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공포한다. 결과적으로 WCCW는 NWA를 탈퇴하고 1986년 2월 20일, 공식적인 단체명을 WCWA(World Class Wrestling Association)로 바꾸며 독립적인 단체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단체명을 바꾸긴 했으나 외부에서는 WCCW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20년간 단체의 최고 챔피언쉽으로 인정되었던 NWA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은 WCCW 월드 H.챔피언쉽으로 변경되었고 본 타이틀을 보유하던 릭 루드가 그대로 단체의 초대 챔피언으로 추대된다. PWI(Pro Wrestling Illustrated)는 당시 AWA, NWA나 WWF 타이틀과는 달리 WCCW 월드 타이틀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단체는 ESPN과 계약을 맺고 주간 쇼를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WCCW는 챔피언은 실격이나 카운트 아웃을 통해서도 바뀔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해 4월에는 크리스 아담스가 돌아와 단체의 챔피언이였던 릭 루드와 대립을 진행했다. 훗날 WWF에서 얼티및 워리어로 활약하게 될 딩고 워리어(Dingo Warrior)가 잠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케빈 본 에릭은 블랙 바트(Black Bart)를 꺽고 단체의 챔피언으로 거듭난다.



 

6월 5일에 케리 본 에릭이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쪽 발목 제거 수술을 받는다. 케리 본 에릭은 훗날 링으로 복귀하지만 한쪽 다리가 성치 않았던 그는 예전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관중 동원수는 떨어져만 갔다. 9월에는 아담스를 비롯한 많은 스타들이 빌 와츠의 UWF(Universal Wrestling Federation)로 이적한다.

* 또 다른 비극 [1987년]



 

1986년 말부터 1987년까지 WCCW는 전국적인 확장을 시도하는 UWF에 밀려 텍사스에서 2번째 수준의 단체로 추락한다. 수 많은 정상급 스타들도 단체를 떠났다. 4월에 마이크 본 에릭(Mike Von Erich)이 신경 안정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사실 마이크는 프로 레슬러로 활약하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빗의 사망 이후, 프리츠가 그를 강요했고 1985년 이스라엘 투어에서의 부상 후 변변찮은 수술도 받지 못했다. 독성 쇼크 증후군(toxic shock syndrome)을 앓던 그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정상이 아니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故人)이 된 데이빗과 마이크 본 에릭 추모 경기를 가졌으나 3년만에 최악의 관중 동원을 기록했다. 한편, WWF는 레슬매니아(WrestleMania)3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타 단체들을 압박했다.



 

본 에릭 가족의 비극이 계속되자 팬들도 서서히 사라졌다. 관중동원에 실패하면서 단체는 도산의 위기에 처해진다. 1987년 중반에 짐 크로켓 프로모션이 UWF를 매각하자, UWF에서 나온 켄 만텔(Ken MAntell)은 자신의 단체 WWW(Wild West Wrestling)을 창설한다. WWW는 과거 WCCW에서 활동하던 랜스 본 에릭, 와일드 빌드 어윈, 미싱 링크, 버디 로버츠, 브라이언 아디아스, 잭 빅토리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켄 만텔은 케빈, 케리 본 에릭과 함께 단체를 공동 소유하는 조건으로 WCCW와 WWW의 합병을 동의한다. 이후, 크리스 아담스가 돌아오고 프리버드-본 에릭 대립 스토리가 다시 한번 진행되면서 단체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 프로 레슬링 USA [1988년]



 

1988년에는 케리 본 에릭이 WCCW 월드 챔피언으로 활약하면서 크리스 아담스, 페레즈(Perez), 파손스(Parsons)등과 대결했다. 그 해 여름에 크리스 아담스, 테리 고디, 테리 테일러가 WCCW를 떠났다. 그리고 1987년에서 1988년 사이 WCCW는 AWA와 CWA와 의기투합하여 프로 레슬링 USA를 결성한다. 그들은 WWF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메이저-PPV 카드를 걸고 수퍼 클래쉬(Super Clash)를 개최했다. 1988년 12월에 시카고에서 열린 수퍼 클래쉬3 에서 CWA의 챔피언, 제리 로러와 WCCW의 챔피언, 케리 본 에릭이 통합 챔피언전(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큰 흥행을 끌지 못했고 이후 프로 레슬링 USA는 해산 되었다.

* 단체의 마지막 [1989년-1990년]



 

수퍼 클래쉬 3가 끝나자, 재정적 위기에 처한 케리 본 에릭과 켄 만텔은 WCCW를 CWA의 소유주인 제리 제럿(Jerry Jarret)에게 인수시킨다. 두 단체의 합병으로 USWA가 새로이 탄생한다. 제리 제럿은 USWA를 댈러스와 멤피스, 두 개의 본부에서 운영하기로 한다. USWA 댈러스에는 훗날 WWF에서 활약할 퍼니셔(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믹 폴리 등이 신인 시절을 지내기도 했다. 단체가 사라진 후인 1991년에 케빈 본 에릭은 타 단체와 협력하며 과거 WCCW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으나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1991년, 크리스 본 에릭이 자살한다. 본 에릭 가족의 막내였던 그는 USWA에서 페르시 프링글(Percy Pringle)과 대립을 하며 활약. 하지만 그는 그의 형제들과 같이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한 끝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텍사스 토네이도로 잘 알려져 있는 케리 본 에릭은 1990년 중반에 WWF와 계약을 맺고 얼마 후, 인터콘티낸탈(Intercontinental) 챔피언이 되는 등,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WCCW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지라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1986년, 다리를 절단한 이후로 진통제를 비롯한 약물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93년 2월 18일, 코카인 소유 혐의로 기소가 확정되자 텍사스 덴톤(Denton)에 있는 부친의 목장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7년에 게리 하트가 케빈과 프리츠 본 에릭의 이해관계 없이 WCCW의 이름을 딴 독립 단체의 쇼를 스포타토리엄에서 개최했다. 1997년 9월 10일, 프리츠 본 에릭은 63세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의 일원인 케빈 본 에릭은 WWE와 협의 하에 WCCW 영광과 비극의 역사를 담은 DVD를 제작하기도 했다.


* 참고: 위키백과 / 작성: TripleH [
tripleh16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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