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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H 소개와 역사
 


 

* 경기 결과 모음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 프로 레슬링 노아(NOAH) 소개와 역사



2000년 6월, 미사와 미츠하루의 전일본 프로 레슬링 탈단이 시발점이 되어 자이언트 바바 사후의 전일본 프로 레슬링 체재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선수들이 단결하여 미사와 미츠하루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당시 전일본 프로 레슬링의 몇몇 선수들과 임직원들을 제외하면 모조리 미사와 미츠하루를 따라서 이탈을 했기 때문에, 단체 개양 당시 총 인원이 약 50명에 가까웠을 정도였는데, 이는 일본 프로 레슬링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는 새로운 단체를 출범시키려면 자금이 필요했는데,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가 낼 수 있었던 자금은 50만엔 수중이였다고 한다. 이때 당시 약 50명이나 되었던 임원들은 수입없이 버텼다고 하였고, 50만엔으로는 흥행을 할 수 있는 경기장 조차도 임대하기 어려웠으나, 나카다 류와 치분이 있었던 디퍼 아리아케의 관리 회사측에서 미사와 미츠하루의 신 단체를 도와주겠다고 약속. 보증금 없이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하였기에 디퍼 아리아케를 정비하는 날에는 프로 레슬링 NOAH 소속 선수들이 청소를 하여 도와주었다고 한다.

단체명의 의미는 NOAH 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 에서 따온 말이며, 미사와 미츠하루가 출발하는 새로운 배는 전일본 프로 레슬링이라는 전통의 호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정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2000년 8월 5일과 6일, 2일에 거쳐서 단체 개양전이 발표되었고, 흥행 장소는 디퍼 아리아케로 확정되었다.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한지 1시간도 안되어 모두 매진이 되었기 때문에, 미사와 미츠하루의 개혁정신이 묻어나는 신 단체가 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프로 레슬링 NOAH에서는 미사와 미츠하루가 전일본 프로 레슬링의 사장 시절때 시도하고 싶었으나 고위층의 반대로 인해 시도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대형 세트, 화려한 조명, 하나미치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경기성 이외의 요소로는 '무시 킹 테리'라는 투구벌레 왕자 무시 킹이라는 게임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어린 아이들에게 어필하는 캐릭터를 데뷔시켰으며, 팬들을 위한 코믹한 요소의 흥행등도 개최하곤 했다. 상품 판매장에서는 1회 500엔으로 미사와 미츠하루의 명함이 들어간 케이스 같은 소품등을 비롯해 직필 사인 등을 판매하였고, 시합 개시전, 인터미션, 그리고 시합 종료후에는 선수들의 사인회나 촬영회를 일일 개최하는 등, 팬 서비스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1년 7월에는 일본 무도관에서 흥행을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1년채 안되어 사실상 메이저 단체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2004년 7월 10일과 2005년 7월 18일에는 도쿄 돔에서 흥행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장래적인 통일 기구 설립을 목표로 한 단체 연합 조직인 '글로벌 레슬링 연맹 (Global Professional Wrestling Alliance)' 를 설립. 전 세계적으로 적극적인 프로 레슬링 단체간에 교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몇번의 합동 흥행을 끝으로 얼마 안가 흐지부지 사라지게 되었다.

※ 당시 GPWA 연맹에 포함되었던 단체들은 다음과 같았다.
- 프로 레슬링 NOAH (일본)
- 프로 레슬링 ZERO1 (일본)
- BML (일본)
- DDT (일본)
- 엘 도라도 (일본)
- IWA 저팬 (일본)
- 카이엔타이 도조 (일본)
- 켄스케 오피스 (일본)
- Ring of Honor (미국)
- World League Wrestling (미국)
- European Wreslting Association (오스트리아)



 


그러나 이러한 프로 레슬링 NOAH의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세대 교체 실패인데, 리키오 타케시가 제 몫을 하지 못하면서 프로 레슬링 NOAH는 다시 타우에 아키라와 아키야마 준 같은 베테랑에게 의지하기 시작. 이후 팬들로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관중 동원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NTV 중계권도 아슬아슬했던 상황이였기 때문에 미사와 미츠하루가 다시 총대를 메고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써 활약을 하였지만 노쇠화로 인해 이전같지 않은 경기력은 오히려 팬들의 비난만 사고야 말았다.

이후 프로 레슬링 NOAH는 부진을 모면하고자 이전같지 않은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였고, 주요 흥행들은 연달아 실패. 신장암에서 복귀하여 단체를 다시 일으켜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코바시 켄타의 몸상태는 예전보다도 최악이였기 때문에 그마저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2009년 3월 이후로 NTV 측으로부터 중계권도 잃게 되는 바람에 자금융통이 매우 힘들어졌으며, 그 결과 2012년에는 나카다 류와 에이겐 하루카가 일본 야쿠자와 연결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젊은 선수들의 부재는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2006년부터 종종 나왔던 부분이였는데, 2012년 현재는 선수들 대부분이 30줄로써, 20대 후반 선수는 단 한명도 없는 상황이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주축 선수들의 연달은 부상을 타 단체 소속 선수나 혹은 단체없이 프리로 뛰는 선수들에게 의지를 하여 공백을 가까스로 메꾸고 있을 정도다.

 


2009년 6월 13일에는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 도중 백드롭을 맞고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고가 벌어졌는데,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망 사건은 우리 나라 주요 언론에서도 다룰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였다. 사망 원인은 백드롭으로 인해 경수 손상이며, 목뼈 내부까지 부러져 그 여파로 종추 신경계에 손상을 입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이전부터 미사와 미츠하루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고 하며, 훗날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고백한 바로는 목을 뒤로 젖힐 수 조차도 없을 정도였으며,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는 것 조차도 힘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역 시절 접수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망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으며 프로 레슬링 NOAH는 이러한 비극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였으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부와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예로 역도산의 차남인 모모타 미츠오의 탈단 등)

 


이후 신일본 프로 레슬링과의 적극적인 교류 등, 프로 레슬링 NOAH도 위기속에서 분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수도권에서도 프로 레슬링 NOAH의 인기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오히려 프로 레슬링 NOAH가 만원 사례에 성공한 흥행을 찾는 것이 더 빨랐을 정도로 실적이 매우 좋지 못하였다.

2012년에는 나카타 류와 에이겐 하루카의 야쿠자 개입설을 시작으로, 이즈미다 준지의 폭로건 등, 프로 레슬링 NOAH의 미래가 불투명하였으나, 최근 이러한 것을 다시 바로잡고 다시 내실있는 운영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 노아의 토너먼트 경기



2010년, 프로 레슬링 NOAH의 새로운 토너먼트로 탄생한 글로벌 리그는 신일본의 G1 클라이맥스와 전일본의 챔피언 카니발같은 헤비급 레슬러들을 위한 리그전이다. 2007년에 故 미사와 미츠하루가 4번째 방어전을 끝마치고, 5번째 도전자를 가리기 위해 리그전이 있긴 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NOAH 내에서는 헤비급 레슬러들의 리그전이 열린적은 없었고, 일찍이 아키야마가 2006년쯤에 NOAH에는 헤비급 리그전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는 있었다. 최초 우승자는 타카야마 요시히로였다. 우승자에겐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010년 : 타카야마 요시히로 (vs 아키야마 준)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태그 리그는 NOAH 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헤비급 레슬러들을 위한 리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일본의 G1 태그 리그, 전일본의 세계 최강 태그 리그와 같은 태그 리그전이며, 2008년과 2009년에는 4월에 시작하여 5월 무도관에서 끝나였으나 2010년부터는 1월달에 시작되어 코라쿠엔 홀에서 결승전이 치뤄졌으며, 2010년부터는 전 대회와는 달리, 각 조에 4팀이 참가하여 두 조의 1위팀이 결승전에서 바로 붙는 형식이 되었다. 우승팀에겐 GHC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008년 : 사이토 아키토시 & 바이슨 스미스 (vs 미사와 미츠하루 & 오가와 요시나리)
2009년 : 미사와 미츠하루 & 시오자키 고 (vs 사사키 켄스케 & 모리시마 타케시)
2010년 : 타카야마 요시히로 & 사노 타쿠마 (vs 스기우라 타카시 & 타니구치 슈헤이)


2007년부터 시작된 NOAH의 NTV Jr. 태그 리그는 NOAH에서 시작된 최초의 리그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신일본에는 Jr. 태그 리그전이 없었고, 전일본에는 있긴 했지만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일본 메이저 단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Jr. 태그 리그라고 봐도 무방하며, 일본 내에서 Jr. 선수들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 NOAH 선수들과 더불어 ROH의 브리스코 형제, 브라이언 다니엘슨, 데이비 리차즈를 비롯, 일본 인디계의 이부시 코타나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일찍이 참전하면서 경기 질 자체는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승팀에겐 GHC Jr.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007년 : KENTA & 이시모리 타이지 (vs 이부시 코타 & 마루후지 나오미치)
2008년 : KENTA & 이시모리 타이지 (vs 카네마루 요시노부 & 스즈키 코타로)
2009년 : 카네마루 요시노부 & 스즈키 코타로 (vs 아오키 아츠시 & 이부시 코타)


故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후직후 프로 레슬링 NOAH의 부사장으로 임명된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Jr. 리그, 마루후지는 신일본의 베스트 오브 슈퍼 주니어같은 Jr. 토너먼트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첫 대회에서는 GHC Jr. 챔피언이였던 KENTA가 예선 경기 중 부상을 입으면서 장기 결장으로 인해 결승전이 바로 GHC Jr. 챔피언쉽으로 이어진 바 있다.

2009년 : 카네마루 요시노부 (vs 주신 라이거)


* 작성: To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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