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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PW 소개와 역사
 


 

* 경기 결과 모음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 신일본(新日本) 프로레스 소개와 역사



1972년에 일본의 전설적인 레슬러인 안토니오 이노키로부터 창단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이후 전 세계 프로 레슬링씬을 대표하는 프로 레슬링 단체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다른 일본내 단체들인 전일본 프로 레슬링과 프로 레슬링 노아와 더불어 일본의 3대 메이저 단체 중 하나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현재 일본의 프로 레슬링 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매해마다 도쿄 돔에서 흥행을 개최하는 등, 사실상 일본 프로 레슬링 업계의 No.1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전일본 프로 레슬링의 왕도 스타일과는 달리,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스트롱 스타일을 내걸고 있으며, 1970년대부터 링 닥터 제도를 도입하면서 선수 건강 관리 측에서도 크게 신경쓰는 등, 여러모로 많이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전성기때는 미국의 WWE이나 WCW 같은 단체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실제로 WWE나 WCW 측에서 신일본 프로 레슬링과 제휴 관계를 맺으며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90년대 중반에는 UWF와의 대항전을 통해서 일본 프로 레슬링계에서 가장 굵직한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WCW와의 제휴를 통해서 탄생했던 nWo 저팬은 일본에서 사회현상까지 불러 일으켰는데, 1997년 nWo 저팬 T셔츠의 매상은 무려 6억엔에 가까웠으며,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일본 오락부분 법인 소득 순위 85위를 기록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2000년대부터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잠시 정체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과도한 욕심이 문제였다. 언제나 프로 레슬링이 강하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안토니오 이노키로 인하여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프로 레슬링이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한 색깔의 단체로 변하고 있었다. (이노키는 이노키 봄-바-예를 통해서 아예 MMA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신일본 프로 레슬링 단체의 소속 선수들이 MMA 경기를 뛰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단체의 간판 스타였던 나가타 유지같은 선수들은 효도르나 크로캅에게 도전했다가 초살패를 당하면서 자존심을 구기는 등, 결과는 좋지 못했고, 이것은 프로 레슬링의 부진과 더불어 MMA의 인기 상승이라는 부작용 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2002년에는 단체의 탑스타인 무토 케이지가 단체의 방향성에 회의감을 느끼며 전일본 프로 레슬링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런 무토를 따라서 코지마와 켄도 카신이 연달아 이탈. 2002년 5월에는 쵸슈 리키가 이탈하여 사사키 켄스케와 코시나카 시로, 스즈키 켄조가 연달아 쵸슈를 따라서 이탈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 선수들의 계속되는 이탈속에서도 불구하고 안토니오 이노키는 계속해서 자신의 뜻을 굳혔고, 기어코 2004년 5월 3일에는 신일본 프로 레슬링 vs. K-1 의 대항전 컨셉의 흥행을 도쿄 돔에서 개최. 마침 프로 레슬링 노아는 계속되는 상승세 속에서 첫 도쿄 돔 흥행을 개최하는 등, 매우 잘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양 단체의 상황이 매우 대조적이였다. 거기다가 당시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였던  후지타 카즈유키는 MMA와 프로 레슬링 활동을 병행하면서 여러 문제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프로레스 팬들에게 비난을 사기도.




이 시기에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흥행은 관중 동원도 그렇게 좋지 못했으며, 2004년 11월 13일에는 오사카 돔에서 흥행을 개최하였지만 (주최측 발표) 28,000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면서 대실패. 이러한 부진은 2005년에도 계속되었으며, 제대로 풀리는게 없었던 시기였다. 상황을 반전하고자 IWGP 헤비웨이트 타이틀과 전일본의 삼관왕 타이틀 매치가 열리면서 사상 최초의 IWGP + 삼관 챔피언이 탄생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못했다.

 


결국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 마지막으로 썼던 카드는 브록 레스너였지만, 브록 레스너는 여기서도 이기적인 성격을 보이면서 오히려 신일본 프로 레슬링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으며 업친데 덥친격으로 그 끝도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일본 프로 레슬링을 더 곤란에 빠지게 했다.

결국 2005년 11월에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주식 51.5% 를 유크스에게 매각하면서 단체는 사실상 유크스측의 단체가 되었으며,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30년만에 안토니오 이노키의 손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2006년 1월에는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 이대로 망하는게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로 상당히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히로 사이토, 고토 타츠토시, 니시무라 오사무, 요시에 유타카, 나아기 미츠야, 타케무라 카즈시, 나루세 마사유키 등이 탈퇴했으며, 여기에 일본 프로 레슬링계 최고의 링 아나운서인 다나카 히데카츠도 탈퇴하였다. 텐잔 히로요시도 이 시기에 탈단설이 나왔을만큼 (신일본 측과의 계약이 계속해서 보류되었음.) 이대로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 무릎을 꿇는가라고 보는 업계의 시각도 많았다.

선수들의 이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2006년 중순에는 브록 레스너의 탈단을 비롯하여 34년동안 신일본 프로 레슬링에서 활동해왔던 후지나미 타츠미도 탈단. 이때 후지나미 타츠미는 자신이 꿈꾸는 프로 레슬링과 당시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 추구하고 있는 스타일의 차이에 크게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속에서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우선 기반을 다시 만드는데 집중하였고, 2007년 도쿄 돔 흥행은 전일본 프로 레슬링의 도움을 받아서 성공리에 개최. 새로운 에이스들은 타나하시 히로시와 나카무라 신스케를 탑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고토 히로키같은 선수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2008년은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터닝 포인트와도 같은 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일본 프로 레슬링 소속의 무토 케이지가 8년 4개월만에 IWGP 헤비웨이트 타이틀에 도전. 그리고 나카무라 신스케를 꺾고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였고, 그 결과 유크스가 신일본 프로 레슬링을 운영하기 시작한 아래 최초로 흑자를 맞이하는 경사가 나기도. 이후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프로 레슬링 노아 등의 부진으로 인해 다시 한번 프로레스 업계의 No.1 이 되는데 성공하였으며, 대규모 흥행의 관중 동원 부분에서도 다른 단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1월에는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스폰서 기업으로 활동해오고 있던 부시 로드가 유크스측으로부터 주식을 매입. 2월 1일부터 신일본 프로 레슬링의 대주주 회사는 부시 로드가 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부시 로드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함께 성장 전략을 발표하면서 신선한 시도를 하겠다는 방침인데, 앞으로의 전망이 기대되는 바이다.


* 주요 경기장과 타이틀



신일본 프로 레슬링은 1월 4일마다 도쿄 돔에서 흥행을 개최한다. 이승엽 선수가 소속되어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이기도 한 도쿄 돔에서 흥행을 개최하고 있는 단체는 현재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 유일하다. 무대가 도쿄 돔인 만큼 드림 매치급의 경기들이 많이 부킹이 되곤 하는데, WWE판 레슬매니아라고 보셔도 무방함.

신일본에서 존재하는 타이틀은 총 4개이다. IWGP 헤비웨이트, IWGP 태그팀, IWGP Jr. 헤비웨이트, IWGP Jr. 태그팀 등.

과거 킹 오브 더 링처럼 신일본 프로 레슬링에도 토너먼트가 존재하는데, 현재 열리고 있는 토너먼트는 다음과 같다.

* G1 클라이맥스
* G1 태그 리그
* 신일본 컵
* 베스트 오브 슈퍼 jr.

* G1 클라이맥스



1991년에 신일본으로 부터 발표된 G1 클라이맥스. 이 토너먼트를 통하여 신일본 소속, 나아가 일본내에서 혹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헤비급 레슬러를 가리기 위하여 만들어졌고, 이후 매해 8월달에 열리는 이 토너먼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레슬링 토너먼트가 되어버렸다.

이미 일찍이 1974년 ~ 1977년 과 1978년 ~ 19872년 그리고 1983년과 1984년에 여러 토너먼트가 열리긴 했지만, G1 클라이맥스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일본 내에서 가장 의미있는 토너먼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역사가 긴 만큼 여러 시스템을 거쳐왔는데, 바로 탈락제가 있었던가 하면 리그전을 통해 2조에 4명씩, 혹은 5명, 혹은 6명, 혹은 8명이 배치되어 준결승전 - 결승전, 혹은 바로 양 조의 1위들이 결승전에서 대결을 하곤 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신일본 소속내의 선수들외에 타 단체 선수들도 참가하면서 그 무게감은 더욱더 두터워지고 있으며, G1 클라이맥스를 우승한다는 것은 사실상 일본 헤비급 레슬러들의 Top 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승자는 IWGP 헤비급 챔피언쉽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곤 한다.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도 리그전에 참가하면서 G1 클라이맥스를 통해 챔피언 vs 도전자들의 프리뷰 경기를 미리 볼 수 있다는 것도 G1 클라이맥스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챔피언들이 간혹 불참하는 경우도 있는데, 1992년 쵸슈 리키, 1993년 그레이트 무타 (다만 다른 페르소나인 무토 케이지로 G1 클라이맥스에 참가), 2001년 후지타 카즈유키, 2004년 후지타 카즈유키 그리고 2008년 무토 케이지가 바로 그 경우이다.

하지만 헤비급 리그라서 무조건 헤비급 선수들이 참전하는 것도 아니라, Jr. 선수들도 간혹 참전하는데,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G1 내에서의 Jr. 선수들에게도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2006년에는 카네모토 코지가 준결승전까지 진출하면서 Jr. 로써는 최초로 조별 예선을 통과한 선수가 되었고, 2010년에는 비록 프린스 데빗이 예선 탈락을 하였지만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현재 최다 우승자는 쵸노 마사히로로써, 총 5번의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뒤를 잇는 것은 텐잔 히로요시로 3번이나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역대 우승자 명단 :


1991년 : 쵸노 마사히로 (vs 무토 케이지)
1992년 : 쵸노 마사히로 (vs 릭 루드)
1993년 : 후지나미 타츠미 (vs 하세 히로시)
1994년 : 쵸노 마사히로 (vs 사사키 켄스케)
1995년 : 무토 케이지 (vs 하시모토 신야)
1996년 : 쵸슈 리키 (vs 쵸노 마사히로)
1997년 : 사사키 켄스케 (vs 텐잔 히로요시)
1998년 : 하시모토 신야 (vs 야마자키 카즈오)
1999년 : 나카니시 마나부 (vs 무토 케이지)
2000년 : 사사키 켄스케 (vs 나카니시 마나부)
2001년 : 나가타 유지 (vs 무토 케이지)
2002년 : 쵸노 마사히로 (vs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3년 : 텐잔 히로요시 (vs 아키야마 준)
2004년 : 텐잔 히로요시 (vs 타나하시 히로시)
2005년 : 쵸노 마사히로 (vs 후지타 카즈유키)
2006년 : 텐잔 히로요시 (vs 코지마 사토시)
2007년 : 타나하시 히로시 (vs 나가타 유지)
2008년 : 고토 히로오키 (vs 마카베 토기)
2009년 : 마카베 토기 (vs 나카무라 신스케)
2010년 : 코지마 사토시 (vs 타나하시 히로시)

* G1 태그리그



G1 클라이맥스가 발표되었던 해에 시작한 G1 태그 리그는 전일본의 세계 최강 태그리그에 이어 일본 내에서 가장 중요한 태그팀 관련 리그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승리한 팀은 자연스럽게 IWGP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나 2002년과 2004,2005년에는 잠시 열리지 않은 바 있다.

이 태그 리그전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는 무토 케이지 (총 5회) 이며, G1 클라이맥스와는 달리, 태그 리그에선 외국인 용병들도 우승 혹은 결승 진출 등,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역대 우승 팀 :

1991년 : 후지나미 타츠미 & 베이더 (vs 쵸슈 리키 & 사이토 마사)
1992년 : 쵸슈 리키 & 하시모토 신야 (vs 하세 히로시 & 사사키 켄스케)
1993년 : 무토 케이지 & 하세 히로시 (vs 스캇 노턴 & 헤라클레스 헤르난데스)
1994년 : 무토 케이지 & 하세 히로시 (vs 쵸노 마사히로 & 슈퍼 스트롱 머신)
1995년 : 쵸노 마사히로 & 텐잔 히로요시 (vs 야마자키 카즈오 & 키도 오사무)
1996년 : 하시모토 신야 & 스캇 노턴 (vs 무토 케이지 & 릭 스테이너)
1997년 : 무토 케이지 & 쵸노 마사히로 (vs 하시모토 신야 & 나카니시 마나부)
1998년 : 무토 케이지 & 코지마 사토시 (vs 후지나미 타츠미 & 하시모토 신야)
1999년 : 무토 케이지 & 스캇 노턴 (vs 나카니시 마나부 & 나가타 유지)
2000년 : 이이즈카 타카시 & 나가타 유지 (vs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2001년 :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vs 마이크 바턴 & 짐 스틸)
2003년 : 텐잔 히로요시 & 니시무라 오사무 (vs 타카야마 요시히로 & TOA)
2006년 : 쵸노 마사히로 & 나카무라 신스케 (vs 타나하시 히로시 & 카네모토 코지)
2007년 : 자이언트 버나드 & 톰코 (vs 타나하시 히로시 & 카네모토 코지)
2008년 :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vs 마카베 토기 & 야노 토루)
2009년 : 자이언트 버나드 & 칼 앤더슨 (vs 타구치 류스케 & 프린스 데빗)

* 베스트 오브 슈퍼 jr.



매해 5,6월마다 열리는 베스트 오브 슈퍼 Jr.는 주니어급의 G1 클라이맥스이라고 해도 무방하며, Jr. 체급이 아닌 선수들은 참가할 수 없다. 1988년에 만들어진 이 토너먼트는 원래는 탑 오브 더 슈퍼 주니어스라고 불리웠으며, 초반에는 지금과는 다른 승점 계산으로 리그전으로 진행되었고, 이후 여러 룰으로 바뀌었으나, 최근에는 각 조의 1,2위끼리 준결승전 -> 결승전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1994년부터는 지금의 명인 베스트 오브 슈퍼 Jr. 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토너먼트에는 故 크리스 벤와를 비롯해, 핀리, 故 에디 게레로, 딘 말렌코, 타지리, 故 브라이언 필먼, 알렉스 라이트, 故 크리스 캔디도, 크리스토퍼 다니엘스 (커리맨이라는 명으로 참전), 타이슨 키드, 다니엘 브라이언, 지미 레이브같은 선수들이 참가한 바 있으며, 특히 故 크리스 벤와같은 경우는 2회 우승으로 외국인 중에서는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역대 우승자 :


1988년 : 코시나카 시로 (vs 하세 히로시)
1991년 : 호나가 노리오 (vs 주신 라이거)
1992년 : 주신 라이거 (vs 엘 사무라이)
1993년 : 크리스 벤와 (페가수스 키드라는 명으로 우승) (vs 엘 사무라이)
1994년 : 주신 라이거 (vs 슈퍼 델핀)
1995년 : 크리스 벤와 (와일드 페가수스라는 명으로 우승) (vs 오오타니 신지로)
1996년 : 에디 게레로 (블랙 타이거라는 명으로 우승) (vs 주신 라이거)
1997년 : 엘 사무라이 (vs 카네모토 코지)
1998년 : 카네모토 코지 (vs Dr. 와그너 jr.)
1999년 : 켄도 카신 (vs 카네모토 코지)
2000년 : 타카이와 타츠히토 (vs 오오타니 신지로)
2001년 : 주신 라이거 (vs 미노루)
2002년 : 카네모토 코지 (vs 미노루)
2003년 : 카키하라 마사히토 (vs 카네모토 코지)
2004년 : 타이거 마스크 (vs 카네모토 코지)
2005년 : 타이거 마스크 (vs 게도)
2006년 : 미노루 (vs 타이거 마스크)
2007년 : 밀라노 콜렉션 A.T. (vs 이노우에 와타루)
2008년 : 이노우에 와타루 (vs 카네모토 코지)
2009년 : 카네모토 코지 (vs 프린스 데빗)
2010년 : 프린스 데빗 (vs 이부시 코타)

* 작성: Tony [http://puroresu.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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