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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번역해 본 인터뷰 기사는 일본의 주간지 '주간 SPA!'의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 된 나카지마 카츠히코와의 인터뷰입니다.


이 인터뷰는 '주간 SPA!'가 연재 중인 프로레슬러 릴레이 인터뷰 '최강 레슬러 엮기'의 열두번째 시간이었는데, 나카지마는 만15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현재는 프로레슬링 NOAH의 GHC 헤비급 챔피언에 올라있는 선수입니다.


과연 나카지마가 이야기하는 '최강'이란 무엇일지 한 번 보시죠.


(*굵은 글씨는 기자의 질문, 얇은 글씨는 나카지마의 답변입니다)




'최강 레슬러 엮기'. 매번 인터뷰의 마지막에 자신 이외에 최강이라 생각하는 레슬러를 지명하게 하고, 다음엔 그 레슬러를 인터뷰 한다.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강함이란 무엇인가. 이 연재를 통해 탐구해보고 싶다.



"왜 피하는거냐!"


큰 환호성에 속에 그렇게 외치는 관객이 있었다. 초만원의 경기장에 분위기가 깨졌다.


6월 4일, 프로레슬링 NOAH 고라쿠엔 홀 대회. GHC 헤비급 챔피언인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5차 방어전에서 승리한 직후의 일이다.


아마 도전자 모하메드 요네의 필살기인 근육 버스터를 나카지마가 받아내지 않은걸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NOAH를 창설한 미사와 미츠하루는 '접수의 천재'라고 불렸다.


어떤 기술이든 받아낸다. 다 받아내고 이긴다. 그런 미사와의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는 팬의 다수가 지금도 NOAH를 응원하고 있다.


미사와의 심부름꾼 (*선배 선수의 잡무를 대신하는 신예 선수)이었던 마루후지 나오미치, 미사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태그 파트너를 맡았던 시오자키 고...


미사와이즘을 계승하는 레슬러들 속에서 작년에 NOAH에 정식 입단한 나카지마를 어쩌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도 있을지 모른다.



"왜 피하는거냐!"


단 1명의 관객이 외친 소리가 어떤 큰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고, 가슴을 조이는 것 같았다.


나와 겹쳐 보였다.



"프로레슬링을 모르는군 그래"


난 그렇게 비난받던 걸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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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기 신고 선수께서 지명하셨습니다. 만15세 9개월의 나이로 사상 최연소 데뷔를 했고 의지가 강했다고 하셨습니다.



영광이군요. 기쁨니다. 타카기 선수와는 같은 해에 데뷔해서 제가 크게 자극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입니다. DRAGON GATE에서도 시합을 했고, 켄스케 office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도 싱글매치로 대결했었죠. 그때 이후 처음일려나요.



6월 4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의 시합 대단했습니다. 미사와 씨의 추모 세레모니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날 메인 이벤트에서 모하메드 요네 선수의 근육 버스터를 맞지 않으신 건 어째서였나요?



그야 맞으면 지지 않습니까 (웃음).



어떤 기술이라도 받아내는 선수도 있죠.



저도 어느 쪽이냐하면 받아내고 싶은 타입입니다. 기술을 받아내는 타입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육 버스터는 위험한 기술이고, 요네가 가장 특기로 하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요네도 제 필살기인 버티컬 스파이크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하면 그대로 시합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기술 접수의 천재'라고 불린 미사와 씨의 단체의 선수로서 미사와이즘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NOAH에 정식 입단한지 아직 2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마루후지 씨나 시오자키 씨처럼 미사와이즘을 말로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미사와 씨와는 싱글매치로 2번 싸웠는데, 역시 모든 기술을 받아 주셨습니다. 프로레슬링의 깊이를 크게 배운 것 같았습니다.



추모 세레모니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미사와 씨가 만드신 벨트를 지금 제가 갖고 있으니 '소중한 벨트를 갖고 있습니다'란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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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벨트를 차지하신 후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NOAH를 더욱 부흥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6번의 방어를 성공했는데 방어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올해의 NOAH는 'NOAH THE REBORN'이라고 할 정도니 진정으로 처음부터 재생하고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려합니다. 모회사도 작년 11월부터 새롭게 바뀌었었고요.



회사가 새로워짐으로서 선수에게도 변화가 생겼나요?



선수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링에 오르는 일에 관해선 어긋남이 없죠.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모두 NOAH에 오르고 있다는 긍지는 이미 갖고 있으니까요.



작년 12월에 2년 동안 NOAH와 대립을 펼친 스즈키 군이 물러났습니다.



지금까진 스즈키 군에 대해 모두 함께 열심히 하자, 쓰러트리자하는 구도였지만, 스즈키 군이 없어지며 개인의 힘, 생각, 그런 것이 눈에 띠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NOAH로 돌아왔다고 할까요.



관객 동원수에 변화는 있나요?



역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이제부터가 중요하죠. 앞으로 NOAH는 어떻게 될지를 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지금까지가 지금까지였으니 불안요소도 분명히 아직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걸 떨쳐낼 수 있을 싸움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제 자신도 노력해 나가고 싶습니다.



불안요소라 하면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팬들을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습니다.

기대에 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요. 여태까지도 NOAH라는 단체는 그런 단체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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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선수라 한다면 파워플한 킥 기술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라테를 시작하셨죠?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유치원 때 싸워도 지고 언제나 분해서 울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형이 가라테를 하고 있어서 저도 하고싶다고 하고 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 가라테에 열중했기에 싸움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셨죠.



극진회관 마츠이파 대회에서였습니다. 전국에서 다양한 선수들이 모였고, 저도 마을 도장에서 참가했습니다.

자주 "극진 가라테였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전 극진은 아니었습니다. 대회가 극진 가라테 룰이었죠. 풀 콘택트라는 맨손으로 싸우는 방식입니다. 보호구를 장비하고 얼굴 공격 허용이라는 룰도 있지만, 전 얼굴엔 발차기만 가능하고 펀치는 목 아래만 가격할 수 있는 룰이었습니다.



그때의 활약을 마에다 아키라 씨가 보셨다고 하던데요.



마에다 씨와 만난건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엔 격투기를 더 좋아했고 가장 처음 인연이 있던게 마에다 씨였습니다.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에서 링스 대회가 있었을 때 인사를 하러 갔고, 링스에 입단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웃옷을 벗고 등을 보여줘 봐라"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더니 "그럼 와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링스는 해산하게 되었죠.



중학교 졸업 후 입단할 예정이었지만, 졸업하는 해의 12월에 링스는 해산했습니다.

마에다 씨는 기억하시려나요? 기억 못하실 것 같군요. 벌써 15년전 일이니까요.



프로레슬링은 좋아하셨나요?



몇 번인가 관전한 적은 있었습니다. 가라테 선생님이 프로레슬링 팬이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NOAH도 보러 갔었습니다. 처음으로 프로레슬링을 본 건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였습니다. 아이치 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와서 선생님이 데려가셨죠.

선착순 100명이 레슬러와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기에 선생님과 함께 줄을 섰습니다. 하지만 그리 관심도 없었고 전혀 몰랐습니다. '몸 대단하구나' 정도라고만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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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초슈 리키 씨가 이끌던 WJ 프로레슬링에 스카웃되어 입단하셨습니다. 중학생으로선 엄청난 결단인데요.



계속 프로의 세계에 가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따윈 갈 수 없다라고 생각했죠. 공부보단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홀몸으로 키우셨기에 엄청나게 가난했습니다. 가라테 도장에서 돌아오면 집이 어두웠습니다. 전기가 끊겼으니까요. 집 안에서 어머니가 양초를 들고 오시며 "다녀왔니"라고 하시는데 처음엔 귀신인가 하고 정말 놀랬습니다 (웃음). 그런 일이 몇 번이나 계속되면 익숙해지죠. "아, 오늘은 전기가 끊겼구나"라고요.

가스도 끊겼으니 찬물로 목욕해야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저녁밥은 없고, 급식 주머니에 담아온 걸 먹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학교에서 제게만 봉투를 주었습니다. 급식비를 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기에 절 위해서도, 어머님을 위해서도 밖으로 나가 돈을 버는 3년이 더 좋았습니다.



취직은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만 봤으니까요. 중학교는 부활동을 꼭 해야하잖아요? 하지만 전 프로에 갈테니 부활동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고 가라테 선생님을 학교에 불러 교장 선생님과 직접 담판을 지었습니다 (웃음).

그러니 전 부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그대로 가라테 도장에 가서 가라테 연습을 했습니다.



가라테의 프로가 되고 싶으셨나요?



당시엔 K-1이었습니다. 앤디 훅, 어네스트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피터 아츠. 이 4명이 주축이 되어 아주 화려하게 보였죠.

앤디 훅은 극진 가라테 출신이지만, 180cm라 K-1에서는 아주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두곤 했기에 체격이 작은 전 그런 활약을 동경해 프로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습니다.



WJ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신 후 X-1이라는 종합 격투기 대회에서 데뷔하셨습니다. 58초만에 레퍼리 스톱 KO승. 그때 프로레슬링은 어땠나요?



낙법 연습 등은 했습니다. 프로레슬링 데뷔를 하기위한 연습은 그 시절부터 했다고 생각합니다. 초슈 씨께서 "경기복을 만들어 놔라"라고 하셨고 이듬해 1월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데뷔전 상대는 이시이 토모히로 선수였는데 너무 긴장해서 시합이 어땠는진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슨 기술을 걸었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습니다. 필사적으로 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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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WJ 프로레슬링이 해산되고 켄스케 office에 입단하셨습니다. 켄스케 office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WJ 소속 시절에 초슈 씨를 시작으로 하여 고시나카 시로 씨나 호나가 노리오 씨, 스즈키 켄조 (*현재 링 네임은 'KENSO') 씨 등 다양한 분들이 연습을 봐주셨는데, 사사키 씨의 연습이 제일 엄했습니다. 엄격한 곳에 가면 틀림 없을거라 생각했죠. 이유는 그것 뿐이었습니다.

사사키 씨가 WJ극 그만두고 FREE 활동을 하실 때 2년 반 정도 함께 살게 해주셨습니다. 사사키 씨의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리고 가고 수업이 끝나면 데려 오기도 했고, 무척 사이 좋게 지냈습니다.



아주 엄격한 곳이라고 들었는데요.



엄격했습니다. 사생활에서는 무척 잘해 주셨지만, 일과 관련되면 모든게 엄했습니다. 연습, 예의 등이요. 예의가 가장 엄격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인사의 각도같은 것 등까지 지도받았습니다. "머리를 여기까지 내려라"라는 식으로 가르쳐주셨죠.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미야하라 켄토 선수와 동문이셨는데, 미야하라 선수는 어떤 분이셨나요?



나이는 켄토가 저보다 한 살 아래이고 후배였습니다. 노력가였죠. 연습 메뉴라던가 등을 오로지 메모했던게 기억납니다. 엄청나다고 생각했죠. 전 그렇게 계획성이 없습니다. 제 몸상태 등도 포함해 그 자리에서 연습을 결정하죠. 하기 싫을땐 하지 않습니다.

켄토는 잘못하면 '몇시엔 이걸 해야한다'라고까지 생각하는 그런 타입입니다. 저래 보여도 세밀한 녀석이죠 (웃음).



켄스케 office에서는 16살부터 27살까지 소속되어 있으셨죠? 11년 동안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겐 여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택한 장소니까요.

단체라는 틀로 봤을 때 켄스케 office는 정말 작은 단체입니다. 소속 선수도 6명 정도였고요. 그러니 흥행을 하면 모두 함께 링을 설치하거나 했습니다. 사람 수가 적은 만큼 기쁨을 모두가 나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단체를 탈단하신 건 어째서였나요?



사사키 씨가 "독립하면 어떻겠냐?"라고 하셨습니다. 사사키 씨의 말씀이 없었다면 떠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켄스케 office 시절부터 타단체에도 많이 출전하셨는데요.



처음엔 신일본이었습니다. 쥬신 썬더 라이거 씨와 도쿄돔에서 대결했습니다. 2004년 1월에 데뷔했는데 같은 해 5월의 일이었죠. 돔의 크기같은 것도 몰랐고, 그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시합한 적도 없었기에 무척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입장로를 달려서 입장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서 시합 시작 전부터 숨이 차올랐습니다 (웃음).



데뷔하고 5달만에 도쿄돔이라니 엘리트셨군요.



전혀 엘리트가 아닙니다. 언제나 좌절했습니다. 몇 번이나 프로레슬링을 그만두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켄스케 office 시절엔 한 달에 10~15시합을 치뤘기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생각대로 잘 되지 않죠. 벨트를 차지하지 못한다거나, 시합 전개 등도요.



신일본 프로레슬링 외에도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NOAH에 참전한 일이 많으셨나요?



그랬죠. 전일본, NOAH. 하지만 DDT,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에도 참전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단체에 올랐습니다. ZERO-1에서도 시합했고, 오사카 프로레슬링에서도 시합했었죠.



FREE가 되신 후 수많은 선택기 중에서 어째서 NOAH 입단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켄스케 office 소속 시절 후반엔 NOAH에 주로 올랐기에 NOAH에 대한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BRAVE라는 군단에 속해있었고 사이좋게 대해주셨습니다.

시합 외로도 즐거운 장소였기에 자연스레 NOAH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직접 입단하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NOAH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2015년으로 스즈키 군이 등장한 해였습니다. 12월 오오타 구 체육관에서 스즈키 군의 쉘턴 X 벤자민과의 시합에서 승리하고 그 후의 일이었죠.

"생각한게 있다"라는 말을 하고 그 다음달인 1월에 NOAH에 입단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전 NOAH의 일원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NOAH를 부흥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남들보다 강했습니다. 소속 단체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웃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이신가요?



아무튼 NOAH를 부흥시키는 것. 그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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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하면 부흥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NOAH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하는 것을 축으로 삼아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더욱 확립시키는 것은 지켜보는 팬들도 알 수 없게 되었죠. 지금 그야말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니어 헤비급은 다름대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헤비급은 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건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타이틀 매치나 전초전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때,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로서 축이 있는 편이 더욱 보기 쉽고, 더욱 표현하기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군단간 대립같은 것 말씀인가요?



그것조차도 지금 하고있지 않죠. 즉석에서만 하는 것 투성이로, 무엇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 없습니다.

세대 교체의 축을 만들면 재밌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지금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방어에 성공했을 때 "선배 세대가 돌아봐주지 않으려나"라고 코멘트했습니다. 선배들은 위대한 레슬러들 뿐이나 자극을 받으며 좋은 의미로 활성화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NOAH의 장점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점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같다고 전 생각합니다. 더욱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단체라 생각하고, 그만한 수준높은 선수들이 있기에 버라이어티도 풍부하고, NOAH라는 단체는 더욱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야한다고 전 생각하기에 한 사람의 레슬러로서 전력을 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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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레슬러가 되고 싶으신가요?



아픔을 전할 수 있는 레슬러가 되고 싶습니다. 육체적인 아픔도 그렇고, 정신적인 아픔도요.

제가 프로레슬링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건 아픔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좌절을 표현할 수 있고, 버티고 또 버텨 반격해 나가는 과정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물론이지만, 전 아이들이 꼭 봐줬으면 합니다. 집단 괴롭힘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죠. 저도 괴롭힘 당한 경험이 있지만요.

때리면 때린 손은 아프고, 맞은 쪽도 아프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때리는 쪽의 아픔과 당하는 쪽의 아픔. 양쪽을 프로레슬링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리는 것으로 고통을 안다고 할까요. 그런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시합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저희들도 더욱 선수로서 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연재에서는 '강함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데, 나카지마 선수에게있어 강함이란 무엇인가요?



아픔의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전 어릴 때부터 계속 아픔을 겪었죠. 가난했기에 주위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다들 차를 타고 도장에 가는데 저만 자전거로 갔습니다. 태풍이 오는 날도 홀딱 젖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 아픔도, 맞았을 때의 아픔도, 좌절했을 때의 아픔도 뛰어넘으면 강해지지 않나요? 그것을 전 강함이라 생각합니다. 프로레슬러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 해도요.



그럼 다음 최강 레슬러를 지명해 주시겠습니까?



최강이라 한다면 초대 타이거 마스크. 사야마 사토루 씨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최강입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전 데뷔하고 4번째 시합에서 초대 타이거 마스크와 고라쿠엔 홀에서 싱글매치로 대결했는데, 입장할 때 탑로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정말 멋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나카지마를 향해 "왜 피하는거냐!"라는 야유가 날아들었을 때, 난 몇 달 전에 "프로레슬링을 모르는군 그래"라고 비난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강한 레슬러들만 취재하고 프로레슬링을 알지 못한다.


거기에 반박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분했다. 이 연재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런 자신과 나카지마가 겹쳐보여 어쩐지 안심했다.



하지만 나카지마와 난 다르다.


나카지마는 무엇 하나 피하지 않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챔피언에 오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겨우 한 명에게 비난받는 정도로 도망치고 싶어진 나와는 다르다.


강하고, 멋지고, 고귀한, 프로레슬러다.



앞으로도 난 강한 레슬러를 취재할 것이다.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강함이란 무엇인지를 알게될 때까지, 피하지 않고 기사를 적어가겠다.


그건 분명히 내게 있어서 강함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프로필: 나카지마 카츠히코(中嶋勝彦)


프로레슬링 NOAH 소속.

1988년 3월 11일,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 시 출생.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라테를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때 극진회관 마츠이 파 주최의 전국대회에서 우승.

2002년 12월에 WJ 프로레슬링에 스카웃되어 입단.

2004년 1월에 이시이 토모히로와의 시합으로 프로레슬링 데뷔.

같은 해 4월에 WJ 프로레슬링이 사라짐으로서 탈단하고 켄스케 office에 입단.

전일본 프로레슬링, NOAH, ZERO1-MAX 등 다양한 단체에 참전했고, 타이틀도 여럿 획득.

2015년 7월, 켄스케 office를 탈단해 FREE가 되었다.

2016년 1월, 주요 참전 단체였던 NOAH에 입단.

2016년 10월 23일,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에서 스기우라 타카시와의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해 챔피언에 등극.

현재 6차 방어 달성.

176cm, 96Kg.

Twitter:@noah_katsuhiko



(취재, 글: 오자키 무기코 / 촬영: 야스이 신스케)




*원문 & 사진출처: https://nikkan-spa.jp/136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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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단유미르 등록일: 2017-08-09 11:37
나카지마 소년이라고 불리던 그도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내요 어느덧 데뷔 15주년이 다가왔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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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진 등록일: 2017-08-09 19:10
벌써 2년 후면 15주년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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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마카베 토우기의 대하 드라마 출연 소감 인터뷰 (2017년 5월) [2] 공국진 17-05-26 133
629 미국 'SI'의 나이토 테츠야 인터뷰 기사 주요 내용 (2017/5/24) 공국진 17-05-26 157
628 'BEST OF THE SUPER Jr. 24'에 참가할 윌 오스프레이 인터뷰 (2017/05) 공국진 17-05-16 84
627 타카기 산시로 DDT 프로레슬링 사장겸 선수 인터뷰 (2017년 4월) [2] 공국진 17-05-14 124
626 'BEST OF THE SUPER Jr. 24'에 참가할 BUSHI 인터뷰 (2017/5/12) 공국진 17-05-14 148
625 '스즈키 군의 새로운 멤버' 잭 세이버 Jr. 인터뷰 (2017/04) 공국진 17-05-11 202
624 차기 IWGP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 도전자 리코셰 인터뷰 (2017/4/25) [2] 공국진 17-04-27 140
623 차기 IWGP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도전자 쥬스 로빈슨 인터뷰 (2017/4/24) 공국진 17-04-26 188
622 '머슬 몬스터' 세키모토 다이스케 인터뷰 (2017/4/22) 공국진 17-04-25 110
621 제11대 W-1 챔피언 아시노 쇼타로 인터뷰 (2017년 4월) 공국진 17-04-18 79
620 주간 프로레슬링의 코디 홀 인터뷰 (2017년 4월) [4] 공국진 17-04-13 270
619 '탄환전사' 다나카 마사토 인터뷰 (2017/3/25) [7] 공국진 17-03-29 195
618 '이부시 코우타의 '엄청난' 반생(半生)' (2016/7/25) [3] 공국진 17-03-16 272
617 음식점 경영 주당 레슬러 야노 토오루가 말하는 '술자리'의 격식 (2017/02) [8] 공국진 17-03-01 304
616 애니메이션 '타이거 마스크 W' 제작진의 루마니아 출신 프로듀서 인터뷰 공국진 17-02-28 182
615 KUSHIDA의 'HONOR RISING:JAPAN 2017' 흥행 가이드 인터뷰 공국진 17-02-26 80
614 '2대째 인간풍차' 스즈키 히데키 인터뷰 (2017/2/25) [2] 공국진 17-02-25 98
613 위암에 걸렸던 후지와라 요시아키 씨. 복귀전에서 느낀 프로레슬러의 기쁨 공국진 17-02-21 102
612 마카베 토우기 데뷔 20주년 기념 롱 인터뷰 (2017/02) 공국진 17-02-20 154
611 차기 IWGP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 도전자 드래곤 리 인터뷰 (2017/02) 공국진 17-02-09 261
610 '2016년 인디 대상 MVP 수상자' 이시카와 슈지 인터뷰 (2017/1/28) 공국진 17-02-05 103
609 IWGP 태그 챔피언 야노 토오루 & 이시이 토모히로의 인터뷰 (2017/2/4) 공국진 17-02-05 128
608 허슬 출신 와카타카 제트 신스케 인터뷰 (2016/12/31) 공국진 17-01-28 127
607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스즈키 미노루 공식 인터뷰 (2017/1/27) 공국진 17-01-27 177
606 짐 로스가 말하는, 미국판 신일본 프로레슬링 방송으로의 복귀 (2017/01) 공국진 17-01-25 275
605 CMLL의 악역 일본인 루챠돌러 OKUMURA 인터뷰 (2017/01) 공국진 17-01-22 144
604 특별 인터뷰 '젊은 질주' ⑧ : 신인상 하시모토 치히로 편 공국진 17-01-20 98
603 특별 인터뷰 '젊은 질주' ⑦ : 감투상 나카지마 카츠히코 편 [4] 공국진 17-01-19 147
602 특별 인터뷰 '젊은 질주' ⑥ : 기능상 케니 오메가 편 [2] 공국진 17-01-17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