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MENU

open close

선수 프로필

지 식 사 전

사이트 운영진

관리자 [Buffalo Bills]
관리자 [WManiac]
스태프 [eks150]
스태프 [준피디]
스태프 [지에스티]
스태프 [LastOutLaw]
스태프 [gansu]

사이트 현황

전체회원 : 15947명
오늘가입회원 : 1명

전체문서 : 126315
오늘등록문서 : 21
전체댓글 : 525591
오늘등록댓글 : 25

 
88
하시모토 신야 (Shinya Hashimoto)
작성자 : WManiac 등록일 : 2012-06-21 22:46:07 조회수 : 80

하시모토 신야 (Shinya Hashimoto)

본명

 하시모토 신야 (橋本?也)

일명

 파괴왕, 폭살 슈터, 허슬 킹, 부쳐, Mr. IWGP

생년월일

 1965년 7월 3일 ~ 2005년 7월 11일 (사망)

신장

 183cm

체중

 118kg (전성기 시절 135kg)

출신

 일본 기후현 도키시

피니쉬

 수직낙하식 DDT, 삼각 조르기, 폭살 미들킥

주기술

각종 킥, 케사기리 찹, 제비 후리기 (롤링 케사기리 찹), 수면 차기, 다이빙 풋 스탬프

데뷔

 1984년 9월 1일

* 프로레슬러 상세 프로필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실종되어 모자 가정에서 자라지만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후일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에서 아버지를 찾은 하시모토는 어머니의 묘에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가버렸다고 한다. 학생시절부터 유도를 해왔던 하시모토는 중학교에 다닐 시절 이노키와 윌리 윌리엄스전을 보고 이노키를 동경하게 되어 졸업 문집에는 “존경하는 사람 : 안토니오 이노키”라고 쓸 정도로 이노키를 좋아했다. 1984년 4월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 입문 첫날에 후일 라이벌인 쵸노 마사히로와 세탁기의 빨래 차례를 둘러싸고 싸움을 하기도 했다. 입문 후 안토니오 이노키, 사카구치 세이지, 야마구치 고테츠의 트레이너를 받아 입문 5개월 뒤 1984년 9월 1일 고토 타츠토시전에서 데뷔했다. 그 후 해외로 무자 수행을 떠나 캐나다의 캘거리 지구를 중심으로 몽골인 기믹 “하시후 칸”이라는 링 네임으로 활약했지만 상대 선수를 부상시키는 일이 잦은 편이어서 시합을 갖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1988년 7월 2일에는 무자수행 도중 푸에르토 리코에서 무토 케이지, 쵸노 마사히로와 투혼 삼총사를 결성했다. 해외 무자 수행 후, 일본으로 귀국하여 투혼 삼총사로서 무토 케이지, 쵸노 마사히로와 함께 활약하기 시작했다. 대전 상대를 링 위에서 두드려 패는 모습에서 “파괴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 외에 “싸우는 와타나베 토오루”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파괴왕 만큼 정착하지 않았지만 하시모토 본인은 이 닉네임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또한 베이더, 스캇 노턴, 토니 홈 등 거인 외국인 레슬러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시모토 본인은 일본인 레슬러로서 드문 슈퍼 헤비급이지만, 이 체급의 레슬러가 대체로 특기로 하기 쉬운 래리어트나 파워밤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보기보다 날쌘 움직임과 킥 위주의 스타일이었다. 1989년 4월 2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최초의 도쿄돔 대회에서 IWGP 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일본-미국-소련의 3개국 토너먼트에 참전. 1회전에서 초슈 리키를 처음으로 핀 폴승으로 누르고 2회전 준결승에서 빅토르 장기에프를 피겨 포 레그락으로 누르고 결승에서 빅 밴 베이더와 육탄전 끝에 래리어트로 패배. 9월에는 마사 사이토와 태그로 초슈 리키, 이이즈카 타카시를 꺾고 IWGP 태그 챔피언에 오르게 되었다.



1990년 2월 도쿄돔에서 쵸노 마사히로와 태그로 안토니오 이노키, 사카구치 세이지와 격돌하기도 했으며 4월에는 무토 케이지, 쵸노 마사히로에게 패하여 IWGP 태그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7월부터는 이종격투기전에도 적극적으로 도전. 복서 출신의 토니 홈과 3연전에서 2회나 연패하자 중국의 북경으로 수행을 떠나 그의 킥 위주의 파이트 스타일을 정착시키고 주 무기인 수면차기를 익혀왔다. (실제로는 오른쪽 무릎 부상 치료를 위해 중국으로 떠난 것이라 한다.) 그 뒤 토니 홈과 경기에서 리벤지에 성공. 그 후로 볼크 한, 람진 시비프, 데니스 레인과도 이종격투기전을 치루어 승리했다. 1992년 들어 WCW에 참전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에서 노가미 아키라가 부상을 입어 그의 대타로 하세 히로시와 태그 토너먼트에 출전하여 패뷸러스 프리버즈를 누르고 세미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패배하였다. 1993년 하시모토는 전년도에 그레이트 무타로 IWGP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한 무토나, G1 클라이막스 2연패를 달성한 쵸노에 비교해서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WAR의 텐류 겐이치로와 두번의 싱글 매치를 가진 후 상승세를 타면서 9월 20일 그레이트 무타를 누르고 제 14대 IWGP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12월 10일 무토 케이지를 첫 방어전 상대로 맞아 핀 폴로 꺾은 후 3일 뒤 파워 워리어, 1994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쵸노 마사히로, 3월 21일 스캇 노턴을 상대로 4회에 걸쳐 방어. 4월에 후지나미 타츠미에 패하여 타이틀을 빼앗기지만, 한달 뒤 1994년 5월 1일 후쿠오카 돔에서 후지나미를 물리쳐 다시 챔피언이 되어 1년 후 1995년 5월 3일 후쿠오카 돔에서 무토에게 패하기까지 9번의 연속 방어 기록을 달성했다. 이때 활약이 인정되어 프로레슬링 대상 MVP로 선정되었다.


"IWGP 헤비급 챔피언!"



- 하시모토의 V9 방어 기록

V1 1994년 6월 1일 센다이시 체육관 vs. 후지와라 요시아키
V2 1994년 6월 15일 일본 무도관 vs. 초슈 리키
V3 1994년 9월 23일 요코하마 아레나 vs. 파워 워리어
V4 1994년 9월 27일 오사카성 홀 vs. 쵸노 마사히로
V5 1994년 12월 13일 오사카 프릿츠 체육 회관 vs. 하세 히로시
V6 1995년 1월 4일 도쿄돔 vs. 사사키 켄스케
V7 1995년 2월 4일 삿포로 나카지마 체육 센터 vs. 텐잔 히로요시
V8 1995년 2월 19일 양국 국기관 vs. 스캇 노턴
V9 1995년 4월 16일 히로시마 썬 플라자 vs. 로드 스티븐 리갈

1995년 7월에는 히라타 준지와 태그로 스캇 노턴, 마이크 에노스를 누르고 IWGP 태그 타이틀을 획득. 1996년 1월 4일 무토를 누르고 IWGP 타이틀을 획득한 UWF 인터네셔널의 타카다 노부히코와 4월 29일 도쿄돔에서 수직낙하식 DDT에 이은 삼각 조르기로 승리. 제 19대 IWGP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으며 1997년 8월 31일 사사키 켄스케에 패할 때까지 7회 방어에 성공했다.


"타카다 노부히코까지 꺾은 하시모토. 그는 "강한 프로레슬러"의 상징이었다."


- 하시모토의 V7 방어 기록
V1 1996년 6월 11일 히로시마 썬 플라자 vs. 코지마 사토시
V2 1996년 7월 17일 삿포로 나카지마 체육 센터 vs. 릭 플레어
V3 1997년 1월 4일 도쿄돔 vs. 초슈 리키
V4 1997년 2월 16일 양국 국기관 vs 야마자키 카즈오
V5 1997년 5월 3일 오사카 돔 vs. 오가와 나오야
V6 1997년 6월 5일 일본 무도관 vs. 무토 케이지
V7 1997년 8월 10일 나고야 돔 vs. 텐잔 히로요시


"vs. 오가와 나오야"


1997년 4월 오가와 나오야와 경기하여 패배했으나 한달 뒤 5월에 재경기를 가져 실신 KO로 승리했다. 8월 31일 G1 클라이막스 우승자인 사사키 켄스케에 패하여 IWGP 타이틀을 내주었다. 이후 하시모토가 IWGP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통산 20회의 방어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1998년에는 야마자키 카즈오를 꺾고 염원하던 G1 클라이막스 우승을 이루어냈다.


"현재까지 논란이 되는 99년 1월 4일의 오가와전"


1999년 1월 4일 도쿄돔 대회에서 오가와 나오야와 신일본 vs UFO간의 대항전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오가와의 폭주로 사실상 시멘트 경기가 되어버렸고 하시모토는 손도 못쓰고 당하기만 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합 결과는 노 콘테스트가 되었고 시합 후 집단 난투극은 프로레슬링 사상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6월 8일 도쿄돔에서 텐류 겐이치로를 상대로 복귀. 10월 11일에 오가와와 재경기를 벌였지만 패배했다. 2000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오가와의 UFO군과 태그 대결에서 승리. 파괴왕 부활을 과시했지만 4월 7일 도쿄돔에서 패배하면 은퇴하는 조건으로 오가와와 경기에서마저도 패배하여 조건대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사표를 제출했다.


"팬들이 보낸 백만마리의 종이학"


2000년 8월 23일. 어린 팬들의 그의 복귀를 요청하는 백만 마리의 종이학을 신일본 사무소에 보낸 것을 계기로 은퇴 철회를 표명. 10월 9일 도쿄돔 대회에서 제 1시합으로 후지나미 타츠미와 복귀전을 벌여 승리. 직후 신일본 내에 “신일본 프로레슬링 제로-원”이라는 도장을 설립. 그러나 현장 감독인 초슈 리키 등과 문제로 11월 13일 신일본에서 해고당했다. 신일본에서 해고당한 하시모토는 제로-원을 단체로 설립. 12월 23일에는 프로레슬링 노아에 첫 참전. 오오모리 타카오와 경기를 벌여 승리. 8일 뒤 12월 31일 이노키 봄-바-예 2000에 참전. 게리 굿리지와 경기를 가졌다. 그 후 하시모토의 행동에 동의하는 오오타니 신지로, 타카이와 타츠히토가 합류했다. 2001년 1월 4일 신일본의 도쿄돔 대회에서 신일본에서 마찰을 일으켰던 초슈 리키와 유한 결착전을 벌였지만 당시 신일본의 사장인 후지나미 타츠미가 난입. 일명 드래곤 스톱 (후지나미가 링에 난입하여 시합을 중지시켰다.)으로 종료.

2001년 3월 2일 양국 국기관에서 “파괴 없이는 창조도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개양전. 시합의 메인 이벤트에서 신일본의 나가타 유지와 태그를 맺고 노아의 미사와 미츠하루, 아키야마 준과 대전. 패배했다. 시합 후에는 오가와 나오야, 후지타 카츠유키까지 개입된 난투극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노아와 대항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4월에는 신일본의 도쿄돔 대회에서 사사키 켄스케를 상대로 승리했다. 10월에는 스티브 코리노의 NWA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심판을 이용한 코리노의 반칙으로 패배. 하지만 12월에 스티브 코리노, 게리 스틸과 3 웨이 매치에서 승리하여 NWA 헤비급 챔피언에도 올랐다. 그 뒤 철천지 원수로 지내오던 오가와 나오야와 극적으로 화해. 제로-원에서 공투. 태그팀 OH포를 결성하여 12월 9일 톰 하워드, 마크 커를 상대로 승리했다. 2002년 3월에는 댄 세번을 상대로 NWA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루었으나 심판의 빠른 카운트로 패배. 5월 2일 신일본 도쿄돔 대회에 출장. 오가와와 OH포로 텐잔 히로요시, 스캇 노턴을 꺾었다. 10월에는 오가와와 함께 존 하이든리히, 네이던 존스를 꺾고 NWA 인터네셔널 태그 타이틀을 획득했으나 12월에 맷 가파리, 톰 하워드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삼관 헤비급 타이틀도 석권!"


2003년에는 제로-원과 무토 케이지가 이끄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대항전이 발발. 2월 23일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일본 무도관 대회에서 하시모토는 무토 케이지의 새로운 인격체인 그레이트 무타의 삼관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 격전 끝에 승리했다. 이로써 하시모토는 신일본, 전일본 NWA의 헤비급 타이틀을 석권한 두번째 레슬러가 되었다 (첫번째는 무토 케이지). 그 뒤 4월 12일에는 아라시를 상대로 첫 삼관 방어전에서 승리하여 첫 방어에 성공했다. 5월 2일에는 오가와와 태그로 무토 케이지,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승리. 시합 후에 계속된 OH포의 공격에 부상 중으로 결장 중이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카와다 토시아키가 난입하여 OH포가 공격받았다. 6월 13일에는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삼관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했으나 하루 뒤 6월 14일 제로-원 후쿠시마 대회의 6인 태그 매치에서 오른쪽 무릎을 부상당했다. 그 뒤 하시모토의 대타로 오가와가 경기를 뛰어주는 등 분투했다. 그리고 7월 6일에 무토 케이지, 카와다 토시아키와 경기에 강행 출전. 승리했지만 시합 중 카와다의 점핑 하이킥을 케사기리 찹으로 반격하는 상황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구. 이 부상으로 결국 삼관 벨트를 반납했다.


"오른쪽 어깨마저도 부상당했다."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를 부상당한 상황에서도 시합에 강행 출장을 계속했으며, 11월에는 초슈 리키와 대립이 시작. 초슈 리키의 리키 프로와 항쟁에 돌입. 12월에는 단체전으로 격돌하여 압도적인 수의 차이로 승리. 2004년 2월에 초슈와 싱글로 격돌하여 승리했다. 2월 22일에는 토너먼트를 거쳐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 된 카와다 토시아키의 지명으로 도전하지만 오른쪽 어깨 부상의 여파로 패배. 한편 2004년 1월 4일 허슬 개최를 앞두고 다카다 노부히코가 갑자기 프로레슬링 폭로본을 내는 등 프로레슬링을 폄하하는 발언과 행동을 벌이자 이에 발끈한 OH포와 대립. 1월 4일 허슬에서 하시모토는 베이더를 상대로 승리. 그 뒤 허슬에는 허슬 4까지 참전했다. 허슬 2에서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태그로 케빈 랜들맨, 마크 콜먼을 상대로 태그매치를 벌였으나 패배. 허슬 3에서는 오가와 나오야와 태그로 케빈 내쉬, 스캇 홀을 꺾었으며 허슬 하우스 1에서는 KATAKARI를 꺾었다. 허슬 4에서는 두꺼비 대왕을 삼각 조르기로 이겼다. 제로-원 내에서도 후지와라 요시아키와 태그로 NWA 인터네셔널 태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8월 31일 제로-원 대회를 끝으로 오른쪽 어깨 부상 치료를 위해 결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 해에 신일본과 접촉이 있었던 것이 (신일본 vs. 제로-원의 대항전을 추진하려고 했다 알려진다.) 빌미가 되어 오오타니 신지로와 의견 대립. 결국 선수진 vs 프런트 간의 마찰이 표면화 되고 단체 내에도 허슬 출전으로 오가와가 제로-원에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흥행의 관중 동원도 힘들어 졌으며 이로 인해 외국인 레슬러들의 등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들로 하시모토가 오랜 시간 어깨 및 무릎 부상을 치료하지 못하고 출장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11월 25일에 제로-원 붕괴를 선언하고 약 1억엔 가량의 부채는 모두 하시모토 스스로가 책임 지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제로-원 소속이 아닌 프리 랜서가 되었다. 하지만 단체 운영 중 있었던 여러 문제들 (하시모토의 단체 공금 횡령, 링 렌탈 등) 은 그의 캐리어 중 오점이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고 있던 오른쪽 어깨를 수술. 재활을 하면서 링 복귀를 목표로 두고 있었지만 2005년 7월 11일 오전 8시 경, 거주하고 있던 요코하마의 약혼자 (후유키 고도의 미망인인 후유키 카오루로 판명되었다.)의 집에서 뇌의 중추부 출혈로 쓰러져 오전 10월 36분, 후송된 병원에서 사망이 확인되었다. 향년 40세. 하시모토의 급사에는 수면시 무호흡 증후군도 원인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7월 16일에 치러진 장례식에서 무토, 쵸노, 오가와, 오니타 등 단체의 벽을 넘어 많은 레슬러, 각계 저명인, 일반 팬 등 1만명 이상이 참례했다. 특히 투혼 삼총사로 활약하던 무토, 쵸노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으며 무토는 계단에 주저 앉아 일어서지 못했고, 평상시 쿨한 이미지의 쵸노는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눈물을 계속 흘렸다. 2008년 3월 2일, 하시모토의 공적을 기려 2대 IWGP 헤비급 벨트가 나카무라 신스케에 의해 하시모토가에 보내졌다. God Blass Hashimoto…


* 타이틀 획득, 토너먼트-리그전 우승 :

AJPW Triple Crown Heavyweight Championship (1 time)
NWA Pro-Wrestling Xpress
NWA World Heavyweight Championship (1 time)
IWGP Heavyweight Championship (3 times)
IWGP Tag Team Championship (3 times) - with Masa Saito (2) and Junji Hirata (1)
G-1 Climax (1998)
Super Grade Tag League (1992) - with Riki Choshu
Super Grade Tag League (1996) - with Scott Norton
NWA Intercontinental Tag Team Championship (3 times) - with Naoya Ogawa (2) Yoshiaki Fujiwara (1)

* 마지막 업데이트: 2008년 11월 16일.
* 작성자:
Cactus™ [http://grgrkk.egloos.com].

Copyright ⓒ wmania.net All Rights Reserved.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 카와다 토시아키 (Toshiaki Kawada) WManiac 2012-06-21 39
82 스탄 한센 (Stan Hansen) WManiac 2012-06-15 157
81 울티모 드래곤 (Ultimo Dragon) WManiac 2012-06-16 69
80 마사토 다나카 (Masato Tanaka) WManiac 2012-06-12 25
79 코우타 이부시 (Kota Ibushi) WManiac 2012-05-24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