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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슈 리키 (Riki Choshu)
작성자 : WManiac 등록일 : 2012-06-21 22:44:44 조회수 : 93

초슈 리키 (Riki Choshu)

본명

 요시다 미츠오(吉田光雄), 곽광웅(郭光雄)

일명

 혁명 전사

생년월일

 1951년 12월 3일

신장

 184cm

체중

 115kg

출신

 일본 야마구치현 도쿠야마시

피니쉬

 리키 래리어트, 전갈 굳히기(샤프슈터=스콜피온 데스 락)

데뷔

 1974년 8월 8일

* 프로레슬러 상세 프로필


일본 프로레슬러 중 대표적인 재일교포로 유명한 초슈 리키. 일본 센슈대학에서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활약. 일본 선수권 주니어 헤비급 부문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였으며 1972년 뮌헨 올림픽에 한국대표로 출전한다. 그후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카웃 입단 제1호 선수로서 "1972년 뮌헨 올림픽 아마추어 레슬링 대표"라는 대대적인 선전으로 1973년 12월 6일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한다. 당시 입단 회견에서 같은 시기에 라이벌 단체인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아마추어 레슬링 올림픽 대표로 입문한 츠루타 토모미(점보 츠루타)를 의식하여 "츠루타 선수와 시합을 해도 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해버린다.

초슈는 데뷔전을 가지기전 "프로레슬링의 신"이라 불리는 칼 고치 도장에 보내져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갈 굳히기(샤프슈터=스콜피온 데스 락)을 개발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생략한다. 데뷔전에 임한 초슈는 엘 그레코를 상대로 멋지게 승리했다. 데뷔전을 마친 초슈는 1974년 8월 해외 원정을 떠나 유럽 등지에서 시합을 가졌고 1975년 2월부터 프로레슬링의 본고장 미국에서 시합을 한다. 미국으로 건나간 초슈는 플로리다에 있는 고치 도장에 들어가 수행을 쌓는다. 그후 캐나다 몬트리올 지구로 떠나 야기 히로시(고우 류마)와 태그로 활약. 1977년 3월에 길었던 해외 무자 수행을 끝내고 개선 귀국. 월드 리그전에 출전하여 안토니오 이노키와 첫 태그를 경험한다. 1979년 5월 제2회 MSN 리그전에 출전. 5월 20일 리그전에서 후지나미 타츠미에게 패하였고 5월 29일 리그전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싱글로 첫 대결. 코브라 트위스트에 패배한다. 1979년 6월 15일 초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넘버 2인 사카구치 세이지와 태그로 마사 사이토 & 히로 마츠다와 60분 3번 승부로 대전. NWA 노스 아메리칸 태그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후로도 방어를 계속하여 1981년 3월 20일 타이거 제트 싱 & 돈 무라코를 꺾고 13회째 방어에 성공하지만 이것이 최후의 방어전이 되어 1981년 4월 20일 구라마에 국기관에서 반납한다. 1979년 8월 26일 프로레슬링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이날 처음으로 국제 프로레슬링의 애니멀 하마구치와 태그를 결성. 이것이 후의 유신군의 포석이 되었고 대전 상대는 오오쿠마 모토시, 그레이트 코지카의 방탕 콤비로 반칙승을 거두었다. 1980년 1월 4일 도쿄 스포츠사 제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감투상을 수상한다.

1980년 5월 제 3회 MSG 리그전에 출전하여 5월 14일 나라현 카시하라시 체육관에서 헐크 호건과 대결하여 액스 봄버에 패하였고 5월 17일에는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전하여 패한다. 4일뒤 21일에는 후지나미 타츠미에 패하였다. 1980년 1월에는 제 1회 MSG 태그 리그전에 호시노 칸타로와 출전한다. 1981년 5월 제 4회 리그전에 출전. 공식전에서 이노키, 후지나미 등에게 패한다. 11월에는 제 2회 MSG 태그 리그전에 출전한다. 1982년 1월 1일에는 애니멀 하마구치와 싱글로 첫 대결. 양자 링 아웃으로 결착이 나지 않는다. 1982년 1월 4일에는 도쿄 스포츠사 제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기능상을 수상한다. 3월에는 제 5회 MSG 리그전에 출전하여 3월 9일에 이노키, 17일에는 후지나미에게 패한다. 4월 25일에는 멕시코로 원정을 떠나 8월 1일 UWA 세계 태그 챔피언 결정전에 그란 하마다와 콤비로 출전하여 카네그와 페이스의 태그를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다. 5일 뒤 8월 6일에는 카네그가 차지한 UWA 세계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 2:1로 승리하여 UWA 2관왕에 오른다. 하지만 귀국 직전 9월 26일 리매치로 카네그에 패하여 헤비급 타이틀을 내주었다. 1982년 10월 5일 반년만에 멕시코 원정을 끝내고 귀국하여 스타덤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안고 시리즈에 들어간다. 1982년 10월 8일 개선 귀국 시합이 된 이날 초슈는 메인이벤트에서 이노키, 후지나미와 트리오를 결성하여 시합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시합전에 후지나미보다 먼저 이름이 불린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초슈는 링 아나운서에게 대들어 불만을 표시했고 선발로 후지나미가 나갈 것을 요구했으나 후지나미는 이를 거부했고 이노키가 이를 보고 후지나미에게 선발을 지시하여 후지나미가 선발로 나갔다. 하지만 초슈와 후지나미는 시합중에 호흡이 맞지 않았고 승리하긴 했지만 시합 후에는 초슈와 후지나미의 싸움으로 번져갔고 초슈가 마이크를 잡고 후지나미에게 "후지나미! 나는 너에게 물리는 개가 아니다! 내가 어째서 너보다 아래라는 거냐! 앞으로는 내가 너보다 앞에 선다!"라는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긴다. 이후 10월 22일에 후지나미와 싱글전을 가지지만 패배하고 11월 4일에는 후지나미의 WWF 인터체인지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반칙패로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다. 그러나 초슈는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11월 22일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합류한 마사 사이토와 WWF(현 WWE)메디슨 스퀘어 가든 대회에 출전. 마사 사이토와 협력을 약속하고 이듬해에 있을 반란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1984년 1월 4일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최고 수훈상과 연간 최고 시합상을 수상한다. 1984년 2월 3일에 후지나미와 WWF 인터체인지 헤비급 타이틀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후지와라 요시아키의 급습을 받아 피를 심하게 흘리게 된다. 심각한 출혈로 결국 시합은 무효가 되어 버렸다. 1984년 2월 12일, 13일에 있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필리핀 원정에 참가하였고 원정중에 마에다 아키라와 싱글전을 가져 승리한다. 1984년 4월 19일 유신군과 정규군의 항쟁이 심하되어 5:5 싱글 대항전을 가졌고 초슈는 대장전으로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전하여 레프리 스톱 패배를 하였다. IWGP 리그전에도 출전하는데, 리그 공식전에서 5월 18일에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패하였고 6월 10일에는 후지나미 타츠미에게 링 아웃승을 거두었다. IWGP 리그전 결승은 안토니오 이노키와 헐크 호건의 결기였는데 구라마에 국기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초슈는 링 사이드에서 경기를 관전하다가 돌연 이노키와 호건에게 래리어트로 가격했다. 1984년 8월 6일과 15일간에 있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파키스탄 원정에 참가. 파키스탄 대통령의 부탁으로 후지나미 타츠미와 하루간 휴전 태그를 결성했다. 1984년 9월 18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매트 마지막 경기인 유신군과 정규군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1984년 9월 21일 초슈를 비롯한 야츠 요시아키, 애니멀 하마구치, 고바야시 쿠니아키, 테라니시 오사무의 5명은 신일본 프로레슬링 흥행 가입을 발표하여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완전 이탈을 하게 된다. 이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선수가 대량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에 유출되어 킬러 칸, 에이겐 하루카등도 초슈에 합류한다. 1984년 10월 7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이 저팬 프로레슬링으로 개칭.

1984년 11월 1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고라쿠엔 홀 대회를 관전하여 메인 이벤트를 관전하지 않고 떠나자 기자들이 초슈에게 이유를 묻자 초슈는 "볼 필요 없다. 전일본에는 긴장감이 없다. 이제 돌아간다."고 말하며 떠난다. 1984년 12월 4일 저팬 프로레슬링 개양전에서 초슈는 75일만에 링으로 복귀한다. 1984년 12월 8일 저팬 프로레슬링의 모든 선수들이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관전. 전시합 종료 후 저팬 프로레슬링 11인이 링에 올라 난투극을 벌여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전면 대항전이 벌어지게 된다. 1984년 12월 12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매트에 첫 참천하여 애니멀 하마구치, 야츠 요시아키와 태그로 오오쿠마 모토시, 그레이트 코지카, 이시카와 케이지와 대전하여 승리한다. 1985년 1월 2일 전일본의 신춘 자이언트 시리즈에 참가한 초슈는 비록 태그지만 텐류 겐이치로 첫 대결을 가졌다. 1월 4일에는 1984년도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지난 8월 2일에 구라마에 국기관에서 있었던 안토니오 이노키와 시합으로 연간 최고 시합상을 수상한다. 2월 21일 저팬 프로레슬링 흥행에서 텐류 겐이치로와 첫 싱글전을 가져 링 아웃승을 거두었다. 3월 9일에는 브루저 브로디와도 첫 대결을 가졌다. 4월 23일에는 릭 플레어의 NWA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여 양자 링아웃으로 무승부가 된다. 6월 19일에는 저팬 프로레슬링 사장직에 취임한다. 8월 5일 야츠 요시아키와 시합 후 초슈는 신일본을 이탈한 슈퍼 스트롱 머신과 악수를 하면서 "이제 바바, 이노키의 시대는 갔다! 우리들의 시대이다!"라고 외친다. 이 발언은 후에 신일본으로 다시 돌아갔을때 발발한 신구세대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발언이다. 11월 4일 오사카성 홀에서 행해진 점보 츠루타와 싱글전에서는 60분 풀타임 무승부로 끝나 11월 15일에 개막한 세계 최강 태그 리그에는 야츠 요시아키와 출전. 준우승의 기록을 남긴다. 1986년 1월 1일에는 최초로 이종 격투기전에 도전하는데 톰 매기와 대전. 3라운드에서 승리한다. 1월 28일에는 야츠 요시아키와 태그로 점보 츠루타와 텐류 겐이치로의 인터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야츠가 텐류에 패하여 타이틀을 따내지 못한다. 하지만 8일 뒤 다시 재도전하여 제 35대 인터네셔널 태그 챔피언에 오른다.

1986년 3월 13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정규군과 6:6 전면 대항전에서 타이거 마스크 2세와 대결하여 승리한다. 4월 5일에는 스턴 한센의 AWA 헤비급, PWF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여 반칙승을 거두어 룰에 의해 PWF 헤비급 타이틀만 획득하여 제 9대 PWF 헤비급 챔피언이 된다. 5일 뒤인 4월 26일에 한센과 다시 더블 타이틀전을 가져 양자 링 아웃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9월 9일에도 한센과 더블 타이틀전에서도 방어, 10월 21일에는 테리 펑크의 도전을 받아 전갈 굳히기로 방어에 성공한다. 11월 최강 태그 리그전에 야츠 요시아키와 출전. 1987년 1월 4일에는 86년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감투상을 수상한다. 1월 17일에는 커트 헤닉을 물리치고 PWF 타이틀을 방어하고 시합후 인터뷰에서 "츠루타, 텐류, 그리고 후지나미를 쓰러뜨리지 않는다면..."이라고 코멘트. 단숨에 단체의 벽을 넘은 교류의 기운이 감돈다. 2월 5일에는 야츠 요시아키와 방어하고 있던 인터 태그 타이틀을 점보 츠루타와 텐류 겐이치로의 학용 태그에 패하여 내준다. 3월 23일에는 저팬 프로레슬링 본사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3월 말에 끝나는 전일본 프로레슬링과의 제휴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함을 발표. 이것으로 인해 저팬 프로레슬링 내부에서 의견이 충돌하여 초슈 리키의 저팬 프로레슬링 추방으로 발전한다. 초슈는 추방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복귀가 가속화 된다. 1987년 3울 25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INOKI 투혼 LIVE 2" 조인식에 마사 사이토의 대리로 출석하여 안토니오 이노키, 후지나미 타츠미와 악수를 나눈다. 이로인해 사실상 신일본 프로레슬링 복귀가 확정된다. 이노키, 후지나미와 악수로부터 3일 뒤 전일본 프로레슬링 익사이트 시리즈 개막전 고라쿠엔 홀 대회에 출전 예정이었던 초슈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전일본을 완전히 이탈한 것이 된다. 이에따라 코바야시 쿠니아키 등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야츠 요시아키, 에이겐 하루카등 일부는 고라쿠엔 홀 대회에 참가하면서 전일본에 잔류한다.

4월 6일 저팬 프로레슬링에서 추방당한 초슈는 신 유신군을 결성. 4월 27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양국 국기관 대회에 내장. 이노키와 후지나미에게 선전포고. 계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신일본의 링에 오를수 없었던 초슈는 5월 14일 삿포로 나카지마 체육센터에서 행해진 후지나미 타츠미와 마사 사이토전에 난입. 이노키와 후지나미에게 리키 래리어트로 가격. 후지나미에게 전갈 굳히기를 걸었다. 6월 1일에는 드디어 2년 8개월만에 신일본 프로레슬링 매트에 등장하여 슈퍼 스트롱 머신과 태그로 사카구치 세이지, 조지 타카노와 대결아여 조지 타카노에게 리키 래리어트로 3카운트를 따내 복귀전에서 승리한다. 6월 12일 양국 국기관에서 행해진 안토니오 이노키가 마사 사이토를 꺾고 IWGP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데 이노키가 시합 후에 "누구라도 좋다! 내 목을 베어봐라!"라고 어필. 초슈가슈퍼 스트롱 머신, 코바야시 쿠니아키와 링에 올라왔고 이어 마에다 아키라와 후지나미 타츠미, 기무라 켄고가 링에 올라왔다. 초슈가 "후지나미, 마에다! 너희들은 분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우리들이 하는거다!" 라고 어필여 세대 투쟁을 호소하고 이노키도 도전을 받으면서 뉴 리더스(New Leaders) vs 나우 리더스(Now Leaders)의 세대 항쟁이 개전된다. 두달 뒤인 8월 19일에 드디어 뉴 리더스와 나우 리더스의 5:5 제거 경기가 벌어졌고 뉴 리더스에는 초슈 리키, 후지나미 타츠미, 마에다 아키라, 슈퍼 스트롱 머신, 기무라 켄고가 출전. 나우 리더스에는 안토니오 이노키, 사카구치 세이지, 호시노 칸타로, 후지와라 요시아키, 무토 케이지가 마사 사이토를 대신하여 출전한다. 초슈는 사카구치에게 리키 래리어트를 먹여 사카구치가 제거, 이어서 슈퍼 스트롱 머신과, 기무라, 후지와라가 탈락. 마에다가 이노키와 동시에 탈락한다. 초슈가 호시노를 리키 래리어트로 제거. 이어서 후지나미가 무토를 제거하면서 시합은 뉴 리더스의 승리로 끝난다.

9월 17일 오사카에거 세대 항쟁 제거 경기가 다시 열렸고 나우 리더에는 호시노 칸타로 대신 딕 머독이, 무토 대신 원래 출전 멤버로 마사 사이토가 출전하여 나우 리더스가 승리한다.

그동안 TV에 계약 문제 미해결로 인해 TV에는 초슈의 시합 방영이 계속해서 보류되고 있었는데 10월 5일 드디어 고라쿠엔 홀에서 TV 복귀 제일전을 가져 팬 공모에 의해 마에다와 후지나미가 동점. 심판인 미스터 타카하시의 동전 던지기로 후지나미가 결정된다. 10월 19일 태그매치에서 태그 파트너였던 후지나미와 내부 분열을 일으켜 결국 초슈는 "내가 이노키의 목을 벤다!"라고 선언. 뉴 리더스가 해체된다. 10월 25일 뉴 리더스들간의 개인 투쟁에 돌입한 초슈는 후지나미 타츠미와 3번 승부로 격돌하여 2:1로 승리한다. 1987년 11월 19일 고라쿠엔 홀에서 행해진 초슈 리키, 마사 사이토, 히로 마츠다 vs 마에다 아키라, 다카다 노부히코, 키도 오사무의 시합중 전갈 굳히기를 걸고있는 초슈에게 터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에다가 초슈의 안면에 하이킥. 초슈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 올랐고 시합은 노 콘테스트로 끝나 초슈는 약 1개월 결장을 강요당하고 마에다는 신일본에서 해고되면서 둘은 이 사건 후로는 링에서 만날 수 없게 된다.

12월 27일 안면 축격 사건후로 39일만에 링에 복귀한 초슈는 당초 안토니오 이노키와 싱글 대결이 예정되었으나 당시 인기절정의 유니트 TPG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전을 요구. 이노키가 대전을 수락하면서 이노키는 초슈와 베이더를 차례로 상대하게 되는데 초슈는 이노키의 만자 굳히기에도 포기하지 않자 세컨드에서 난입하여 초슈의 반칙패가 되었고 이노키는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베이더전에 돌입하여 3분만에 베이더에게 핀폴당해 분노한 관객들이 폭동을 일으켜 버리는데 이사건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양국 국기관에 손해배상을 지급하여 1년 2개월의 회장 사용 자숙을 강요당했다. 1988년 2월 4일 안토니오 이노키의 IWGP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레프리 스톱으로 패한다. 2월 7일에는 슈퍼 스트롱 머신과 IWGP 태그에 도전하지만 패하였고 5월 14일에는 마사 사이토와 5년 반만에 미국 매트에 참전한다. 5월 27일 후지나미 타츠미와 IWGP 헤비급 타이틀전을 가져 노 콘테스트로 끝나 타이틀은 커미셔너가 보관하게 된다. 6월 10일에는 IWGP 태그 타이틀을 마사 사이토와 함께 획득한다. 6월 24일에 후지나미와 다시 재경기를 가졌지만 패배한다. 7월 21일에는 안토니오 이노키를 비록 6인 태그전이지만 이노키로부터 첫 폴승을 거둔다. 하루 뒤 22일에는 IWGP 타이틀 도전자 결정 리그전에서 이노키를 연수 래리어트로 이노키와 싱글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다. 7월 25일에는 베이더와 싱글로 첫 대결. 링 아웃 패를 당하였다. 9월 25일에는 신일본 프로의 대만 원정에 참가. 안토니오 이노키와 약 6년만에 태그를 결성한다. 10월 19일 투혼 부활 7번 승부의 제4전의 상대로, 안토니오 이노키와 1:1 싱글전을 행한 초슈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마성 슬리퍼에 걸려 로프를 잡았지만 이노키가 풀지 않으면서 반칙승을 거두었다. 12월 7일 저팬 컵 제거 경기에 안토니오 이노키, 호시노 칸타로와 트리오로 출전하여 결승에서 "투혼 삼총사" 무토 케이지, 하시모토 신야, 쵸노 마사히로와 대전. 멋지게 승리하여 우승한다. 198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하여 초슈를 비롯한 초슈 군단은 신일본 프로 본대와 태그 결성의 기회가 증가하고 대결 구도의 색이 희미해져 갔다. 같은 해에 행해진 8월 8일의 이노키와 후지나미전의 후에 이노키를 초슈가 목말 한것이 그 대표적 예인데, 바로 초슈 리키를 필두로 한 본격적인 평성 황금기의 개막이 된다.

1989년 1월 4일에는 88년 프로 레슬링 대상에서 감투상을 수상한다. 1월 6일에는 후지나미, 이노키와 트리오를 약 6년 3개월만에 결성한다. 2월 22일에는 이노키를 핀폴로 꺾어 세대 교체를 알린다. 3월 16일 마사 사이토와 가지고 있던 IWGP 태그 타이틀을 슈퍼 스트롱 머신, 조지 타카노에게 패하여 내준다. 4월 24일 신일본 프로 레슬링 도쿄돔 첫 진출 흥행에서 하시모토 신야와 첫 대결을 가져 충격적인 폴 패배를 당한다. 7월 12일에는 샐먼 하시미코프를 꺾고 IWGP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7월 13일 이이즈카 다카유키와 태그로 IWGP 태그에 도전. 슈퍼 스트롱 머신, 조지 타카노를 꺾고 제 10대 IWGP 태그 챔피언에 오른다. 8월 10일 도쿄돔에서 행해진 IWGP 헤비급 타이틀전에서는 베이더에게 패하여 1개월만에 타이틀을 내주었다. 설상가상으로 9월 20일에는 마사 사이토, 하시모토 신야에 패하여 IWGP 태그 타이틀을 내준다. 12월 6일 월드컵 쟁탈 리그전에 출전하여 준결승에서 투혼 삼총사의 쵸노 마사히로와 첫 대결. 승리하였고 하루뒤 7일에는 월드컵 쟁탈 리그전을 우승한다. 12월 31일 구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행해진 최초의 프로 레슬링 흥행에 참전하여 빅토르 장기에프와 대전하여 승리한다.

1990년 1월 4일에는 89년 프로 레슬링 대상에서 감투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카구치 세이지 사장과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자이언트 바바사장이 직접 만나 회담을 가져 "베를린의 벽은 무너졌다"라는 명언으로 정해진 도쿄돔 3대 대항전의 일환으로써 행해진 초슈 리키, 조지 타카노 vs 텐류 겐이치로 & 타이거 마스크 2세의 태그매치가 2월 10일에 열려 초슈와 조지 타카노조가 링 아웃 패를 당하였다. 3월 19일에는 전 요코주나였던 기타오 코지와 최초로 태그를 결성한다. 4월 13일에는 일 & 미 레슬링 서밋에 참전. 쵸노 마사히로와 태그로 마사 사이토, 하시모토 신야의 IWGP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여 13분만에 쵸노가 핀폴패 하여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다. 5월 24일과 26일, 29일에는 대 투혼 삼총사 3번 승부를 가져 제 1전에서는 무토 케이지를 꺾었고 제 2전에는 쵸노 마사히로를 링아웃시켜 승리. 3전 하시모토 신야전에서는 패한다. 6월 12일에 애니멀 하마구치와 대결. 서로 피를 흘리며 그동안의 유한을 청산하려는듯 보였고 리키 래리어트로 승리한다. 6월 14일에는 스탄 한센과 래리어트 콤비를 결성. 마사 사이토, 하시모토 신야와 대전. 센다이에서 행해진 두번째 태그 결성에서 대결한 베이더, 하마구치조와 시합에서 리키 래리어트 오폭으로 한센이 시합을 도중에 포기하여 대기실로 가버린다. 초슈가 베이더와 하마구치의 공격에 계속해서 당하자 불로프를 들고 한센이 다시 나타났고 갑자기 초슈를 공격. 무토, 하시모토, 쵸노, 켄스케가 구출해준다. 이후 한센의 신일본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종료되어 한센과 초슈의 유한 매치는 실현되지 않고 끝나버렸다. 8월 19일에는 베이더를 리키 래리어트 5연발로 핀폴. 제 8대 IWGP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9월 1일~2일에는 중국 원정에 참가. 10월 25일에는 애니멀 하마구치와 유신 콤비를 부활시켜 후지나미 타츠미, 고시나가 시로조를 꺾었다. 11월 1일에는 하시모토 신야를 꺾고 IWGP 타이틀 방어와 동시에 하시모토전 첫 승을 거두었다. 12월 3일 이라크에서 행해진 평화의 제전에 참가한다. 12월 26일 후지나미 타츠미와 방어전에 패하여 타이틀을 내준다.

1991년 초슈는 그레이티스트 18 클럽 초대 챔피언이 되는데 이를 타이거 제트 싱이 인정하지 못하고 초슈에게 테러 행위를 반복하여 3월 21일에 도쿄돔에서 결국 제트 싱과 맞붙어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나 리키 래리어트로 승리하였다. 6월 12일에는 사사키 켄스케와 싱글전으로 첫 대결. 승리한다. 8월 7일부터 11일까지 있었던 G1 클라이막스에 유력한 우승 부보로 출전하지만 첫날 쵸노 전에서는 STF에 패배. 이틀 후 뱀뱀 비글로전에서도 패배하여 리그전 마지막 경기로 하시모토 전에서도 패배하여 전패 탈락으로 11일 양국 대회부터 결장에 들어가 초슈 은퇴설이 나오기 시작한다. 9월 23일 요코하마 아레나 메인이벤트 종료 후 마이크를 잡은 이노키는 초슈를 불러냈고 이노키에게 마이크를 빼앗은 초슈는 마이크를 잡고 "하시모토! 무토! 쵸노! 너희들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라고 부활을 선언. 이에 이노키도 "초슈! 니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해야지!"라고 어필. 초슈는 이노키와 함께 소화 vs 평성의 세대 투쟁을 선고했다. 10월 5일~17일간에 열린 제 1회 SG 태그 리그전에 마음의 스승 마사 사이토와출전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11월 5일 일본 무도관에서 하시모토 신야를 맞아 그레이티스트 18 클럽 타이틀을 방어한다.

1992년 1월 4일 후지나미 타츠미와 IWGP 헤비급 타이틀 & 그레이티스트 18 클럽의 더블 타이틀전을 가져 승리한다. 3월 1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창립 20주년 기념흥행에서 초슈는 기무라 켄고와 태그로 안토니오 이노키, 키도 오사무를 꺾었다. 5월 1일에는 스캇 노턴을 상대로 IWGP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 5월 17일에는 무토 케이지, 6월 26일에는 쵸노 마사히로, 7월 31일에는 SS 머신을 꺾고 IWGP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하나 8월 16일 그레이트 무타에게 패하여 무타의 독무, 흉기 공격에 패하여 IWGP 헤비급 타이틀과 그레이티스트 18클럽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10월 21일에는 하시모토 신야와 태그로 SG 태그 리그전을 우승한다. 고시나가 시로 등의 반 선수회 동맹과 WAR의 대항전은 마침내 본대의 대장이 나오기까지 발전하여 마침내 1993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초슈와 텐류의 정상 대결이 실현되어 격렬한 공방끝에 텐류의 파워밤에 패하였다. 2월 14일에는 텐류의 WAR에 첫 참전. 아수라 하라와 싱글전을 가져 승리한다. 2월 16일에는 신일본 프로 vs WAR의 대항전으로 60분 3번 승부의 10인 태그 매치로 발전. 초슈가 혼자 2번이나 폴을 빼앗으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스트레이트 승리. 초슈는 시합 후에 "이쪽은 베스트 멤버가 아니다!"라고 텐류를 도발한다. 4월 6일에는 양국 국기관에서 텐류 겐이치로와 재경기를 가져 리키 래리어트로 승리하여 지난 도쿄돔에서의 패배를 설욕한다. 5월 3일에는 전일본 시대에도 실현되지 않았던 텐류 겐이치로와 태그를 맺어 안토니오 이노키와 후지나미 타츠미와 대결하지만 후지나미의 그라운드 코브라 트위스트에 패한다. 6월 15일에는 항쟁 격화의 결착전으로 행해진 신일본 프로 vs WAR의 5:5 제거 경기가 열려 시합은 초슈, 하시모토, 쵸노의 신일본 프로의 멤버가 남아 승리하여 대항전의 종지부를 찍었다. 7월 5일 6인 태그매치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어 장기결장이 선언된다.

1994년 1월 4일에는 183일만에 링으로 복귀. 후지와라 요시아키를 리키 래리어트로 꺾었다. 같은날인 1월 4일에는 93년 프로 레슬링 대상에서 지난 1월 4일의 텐류와 도쿄돔에서 경기로 연간 최고 시합상을 수상한다. 이후 소화 vs 평성의 세대 항쟁은 한층 격화 되는데 마침내 싱글 3번 승부로 결착을 내게 되어 제자인 하세 히로시와 싱글로 첫 대결을 가져 리키 래리어트에 이은 전갈 굳히기로 승리하였다. 6월 15일에는 하시모토 신야의 IWGP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한다. 8월 3일부터 7일까지 있었던 G1 클라이막스에 출전하여 제 1전에서 쵸노를 꺾고 2일째에는 야츠 요시아키와 9년만에 싱글전을 가져 전갈 굳히기로 2연승. 3일째 무토전에서는 무토의 변형 피겨 포 레그락에 패하였고 4일째 후지와라 요키아키에게 아킬레스건 굳히기에 패한다. 최종일에는 키도 오사무를 꺾지만 우승에 실패한다. 10월 19일 SG 태그 리그전에 출전하지만 초슈의 컨디션 문제로 리그전 도중에 결장. 1995년 2월 12일 평성 유진군의 낮흥행에 출장할 예정이었으나 결장하여 고시나가 등과 마찰을 일으켜 유진군과의 대립이 예견되었다. 같은날 밤에 열린 신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에서 텐잔 히로요시와 싱글전을 가져 텐잔과 같은 이리 군단의 쵸노와 히로 사이토에 공격을 당하여 패한다. 3월 12일에는 소화 유신군을 부활시켜 평성 유진군과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4월 28일에는 소화 유신군에 현역으로 은퇴했었던 테라니시 오사무가 참가한다. 5월 3일에는 텐류와 혁명 콤비로 태그를 결성하여 기타오 코지, 안토니오 이노키와 맞붙지만 패한다. 5월 17일 평성 유진군과 전면 대항전을 가졌고 6월 17일에는 패자 머리카락 자르기 매치에 패하여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7월 18일 평성 유진군과 다시 6:6 대항전을 가져 고시나가 시로를 리키 래리어트로 가라앉혀 설욕한다. 8월 14일에는 U 인터를 탈퇴하고 프리가 된 야마자키 카즈오와 태그 대결. UWF 인터의 이사이기도 했던 야마자키 카즈오의 신일본 프로 참전 문제를 둘러싸고 점차 대립이 심화되자 같은날 같은 시간에 두 단체는 각각 사무소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초슈가 UWF 인터의 다카다 노부히코와 전화 통화로 전면 대항전이 알려진다. 9월 23일 요코하마 아레나 대회에서 UWF 인터와 대항전이 시작된다. 초슈는 이날 데뷔 3년차인 신인 나가타 유지와 태그로 나카노 타츠오, 안조 요지와 태그 매치로 맞붙었다. 10월 9일에는 도쿄돔에서 전면 대항전. 안조 요지를 리키 래리어트에 이은 전갈 굳히기로 꺾었다. 10월 11일에는 UWF 인터 대회에 참전. 나가타와 태그로 카키하라 마사히토, 안조 요지에게 패한다. 10월 15일에는 SG 태그 리그전에 사사키 켄스케와 사제 태그로 출전하지만 초슈의 컨디션 난조로 결장. 11월 25일 UWF 인터 대회에 출전하여 사실상 UWF의 넘버 2였던 나카노 타츠오를 꺾는다.

1996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신일본 프로레슬링 킬러 카키하라 마사히토와 대전. 전갈 굳히기로 승리한다. 4월 19일에는 UWF 인터 대회에서 초슈가 전갈 굳히기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다카다가 초슈의 배후에서 안면에 킥을 날려 초슈의 앞니가 부러지는 지난날 마에다 아키라의 안면 축격 사건의 재현이 일어나는듯 했으나 초슈는 냉정하게 시합을 계속하여 중요한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6월 30일 인디부터 메이저 단체까지 모두 참가한 제 1회 역도산 메모리얼 대회 메인 이벤트에 참전. 시합 후 "인디는 프로 레슬링이 아니다. 저런 동료와 우리가 프로 레슬링을 함께 했다니!"라고 발언. 이 발언으로 후에 오니타 아츠시와 대립하는 계기가 된다. 7월 26일에는 원나잇 한정으로 하세켄 태그가 부활하여 초슈는 나가타 유지와 태그로 맞붙어 승리한다. 8월 2일에는 G1 클라이막스에 참전. 제 1전에서 하시모토 신야를 만나 박력의 타격전 끝에 리키 래리어트로 승리했다. 리그전 2일째에는 텐잔 히로요시를, 8월 5일에는 제자인 사사키 켄스케를 꺾고 우승전에 진출. 8월 6일. 히라타 준지의 부상으로 부전승으로 우승 결정전에 올라가 쵸노 마사히로를 전갈 굳히기로 꺾고 사상 최초로 G1 클라이막스 전승 우승을 달성한다. 10월 12일~ 11월 1일까지 있었던 SG 태그 리그전에 사사키 켄스케와 사제 콤비로 출전한다.

1997년 1월 4일에는 지난 G1 클라이막스 이후 난무하는 은퇴설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 신야의 IWGP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수직낙하식 DDT에 패하였다. 4월 12일에는 사사키 켄스케와 태그로 후지나미 타츠미, 기무라 켄고를 꺾고 IWGP 태그 타이틀을 획득한다. 5월 3일에는 해외 원정에서 귀국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코지마 사토시, 나카니시 마나부에 패하여 IWGP 태그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6월 19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무소에서 은퇴를 발표하는데 앞으로 은퇴 시합까지 총 8시합을 소화한 후 초슈 리키 은퇴 기념 흥행 "Final Powerhall in YOKOHAMA"를 8월 31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행하고 은퇴 시합을 1998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가질 것이 결정되면서 무는 개 발언부터 매트계에 하극상을 불러오고 수많은 상식을 타파한 혁명 전사도 마침내 링에서 떠날때가 오게 된 것이다.

7월 1일 초슈 리키 은퇴 로드가 시작. 이날 라이벌인 후지나미 타츠미와 태그로 노가미 아키라, 고토 타츠토시를 꺾는다. 7월 6일 은퇴로드 2차전은 nWo JAPAN의 쵸노 마사히로 & 그레이트 무타를 하시모토 신야와 함께 꺾었다. 7월 11일에는 후지나미 타츠미, 기무라 켄고와 태그로 고바야시 쿠니아키, 사이토 아키토시, 오하라 미치요시를 꺾는다. 8월 1일 양국 국기관에서는 기무라 켄고와 태그로 후지나미 타츠미, 키도 오사무와 대전. 기무라가 키도의 키도 클러치에 패한다. 8월 10일에는 나고야 돔에서 후지나미 타츠미와 최후의 명승부를 벌여 드래곤 슬리퍼에 패한다. 8월 31일 초슈의 은퇴 기념 흥행에서는 후지나미 타츠미, 텐류 겐이치로와 황금 태그로 그레이트 무타, 텐잔 히로요시, 히로 사이토와 대전하였다.

1998년 1월 4일에는 후지타 카즈유키, 요시에 유타카, 타카이와 타츠히토, 이이즈카 타카시, 쥬신 "썬더" 라이거를 각각 20분 1개 승부로 한명씩 싸워 모두 승리. 마침내 혁명 전사가 링에서 은퇴를 맞게 된다.

은퇴 후 현장 감독에 취임. 11월 18일에는 오니타 아츠시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나타나 초슈에게 도전하지만 초슈는 무시해버린다. 1999년 1월 4일에는 신일본 프로 vs UFO간의 대항전의 대장전으로 행해진 하시모토 신야 vs 오가와 나오야전에서 오가와가 시멘트로 하시모토를 상대하여 시합은 하시모토의 반칙승으로 끝났고 경기 후 오가와가 신일본을 도발하는 멘트를 날려 신일본의 선수들과 오가와쪽의 선수들이 충돌. 이 와중에 초슈가 링에 올라와 오가와를 "이것이 니가 하고 싶은거냐?"라며 추궁. 초슈가 링을 내려가자 오가와는 도발 행위를 다시 반복하자 초슈는 하시모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가와의 얼굴에 펀치를 먹이고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싸울준비를 하지만 오가와는 떠나버렸고 이로써 초슈는 링 복귀 가능성을 어느정도 내비치게 된다. 한달 뒤 주간 공과의 인터뷰에서 복귀를 시사. 이어서 11월 12일에는 오니타 아츠시에게 자신이 땀이 스며든 티셔츠를 보내 링 복귀를 예고한다(하지만 초슈는 이날의 일을 전혀 몰랐다고 하며 나가시마 이사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5월 22일 초슈는 마침내 링 복귀를 밝혔고. 복귀전의 상대는 오니타 아츠시로 발표된다. 7월 30일에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오니타 아츠시를 전류 폭파 매치로 완승을 거두어 부활. 이후 하시모토와 마찰로 하시모토는 신일본에서 해고되어 하시모토는 "초슈 정권을 쓰러뜨린다"고 공언. 2001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맞붙어 그동안의 유한을 결말 지으려는듯 박력의 타격전을 보이지만 사장인 후지나미 타츠미의 개입으로 노 컨테스트로 종료(이것을 일명 드래곤 스톱이라고도 한다.). 그동안의 유한이 청산되지 않는다. 2001년 2월 4일 초슈가 신일본 프로 매트 전선에 본격적으로 복귀. 3월 21일에는 마카베 신야와 IWGP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한다. 4월 9일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카와다 토시아키와 태그로 첫 대결. 시합 전에는 오가와 나오야를 공격한다. 4월 20일에는 시리즈 참전을 캔슬. 5월 5일에 있을 오가와 나오야와의 경기를 대비한 극비 특별 훈련에 들어갔다. 5월 2일에 다시 복귀한 초슈는 나가타 유지, 나카니시 마나부와 태그로 쵸노 마사히로의 T2000과 대전. 리키 래리어트로 나가타의 핀 폴을 도우면서 승리한다. 시합 후에는 신일본의 사자인 후지나미 타츠미와 회견.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대항할 신 질서의 구축을 위해 움직인다. 5월 5일에는 나카니시 마나부와 태그로 오가와 나오야, 무라카미 카즈나리와 맞붙어 초반에 초슈와 오가와의 약간의 공방을 제외하고 아예 둘이 부딪히는 일이 없었고 치킨윙 암록으로 무라카미가 나카니시에게 항복을 받아내면서 패배한다. 이는 오가와와 초슈가 각자의 파이트 스타일을 강하게 내세워 상대의 공격을 제대로 접수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시합 후에는 오가와와 초슈가 서로를 강하게 비판. 7월 20일의 삿포로 돔 흥행에서 싱글 매치가 예견 되었으나 5월 6일 오가와전을 갖기 전에 부상을 입어 5월 7일 병원에서 진단 결과 등뼈가 심하게 변형 된것이 판명되어 최악의 경우 은퇴도 예상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두달 뒤 7월 20일 삿포로 돔 대회에서는 후지나미 타츠미, 키도 오사무와 사상 최고령 트리오를 결성. 8월 11일에는 키도 오사무와 태그로 키도의 마지막 양국 국기관 매치를 승리로 장식한다. 8월 12일에는 해외 무자 수행을 떠나는 마카베 신야의 작별 시합의 상대를 맡아. 스즈키 겐조와 태그로 마카베, 요시에조와 대전하여 마카베에 강렬한 리키 래리어트 2연발로 승리한다. 11월 2일에는 키도 오사무의 은퇴 시합에 태그 파트너로 나와 후지나미 타츠미, 기무라 켄고와 경기를 가졌다.

2002년 3월 하순경. 초슈가 신일본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문이 메스컴에서 흘러나온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현장 개입에 불쾌감을 나타냈던 초슈는 현장 감독직을 박탈당하고 2001년 중반부터 순회 흥행의 동행에도 참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4일 초슈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탈퇴가 확정. 하루 뒤 25일에 신일본 프로 라스트 매치를 가지고 26일에는 초슈 리키의 신일본 프로레슬링 탈퇴가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5월 31일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탈퇴 회견을 가져 "그 사람에게는 감사하지도 않다!", "안토니오 이노키는 항상 무언가를 무서워한 콤플렉스 인간.", "세계 전략, 세계 전략이라고 주창한건 훌륭하지만 얻은 것이 없다" 등 안토니오 이노키를 강력 비판한다. 6월 6일에는 후지나미 타츠미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장이 "초슈는 회의에도 나오지도 않았다", "초슈의 계약금이야말로 깎이는 것이 당연했다"등의 코멘트를 하자 이에 초슈가 반박하여 "임원회에 결석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가 사원의 안색을 듣는만큼 회의따위에 나갈 필요가 없다. 사람을 뒤에서밖에 벨 수 없는 녀석이 그렇게 톱인 주제에 우유 부단하고 정나미가 떨어진다"등 이노키 비판과 같이 통렬한 비판을 하였다.

6월 17일에는 신일본 프로 시절부터 사이가 좋았던 나가시마 카츠시와 공동 출자로 리키/나가시마 기획을 설립하였다. 9월 27일에는 주간 공과 인터뷰에서 "내가 업계의 한가운데를 질주한다"라고 부활을 선고. 이후 사사키 켄스케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탈퇴하여 초슈의 흑막설이 제기되자 초슈는 10월 8일 결백하다는 회견을 가진다. 11월 12일에는 초슈의 신단체 Fighting of World Japan의 설립기자 회견을 행하여 2003년 3월에 개양할 것을 알린다. 2003년 1월 14일의 WJ 프로레슬링 개양전의 메인 이벤트에서 초슈의 상대로 텐류 겐이치로와 경기가 확정. 시리즈 내내 7연전이 예정되었다.

3월 1일 WJ 개양전에서 텐류 겐이치로를 리키 래리어트로 잡았다. 3월 18일에는 텐류가 부상으로 싱글 6연전이 중지. 6월 29일에는 텐류, 오니타 아츠시를 맞아 전류 폭파 매치에 출전. 승리하여 시합 후에는 오니타의 WJ 추방을 선고한다. 8월 21일에는 텐류와 104세 콤비로 오오모리 타카오, 스즈키 겐조 콤비와 고시나가 시로, 신자키 진세이를 꺾고 초대 WMG 태그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스즈키 겐조의 탈퇴, 야츠 요시아키의 폭로와 탈퇴 등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WJ는 제로-원의 하시모토 신야가 WJ 상황을 보고 도발. 초슈가 이에 반응하면서 11월 18일 초슈가 제로-원에 단독으로 난입. 하시모토와 언쟁을 벌였다 12월 3일에는 제로-원과 개전. 야구치와 태그로 오오타니 신지로, 다나카 마사토의 엠블렘과 대전하여 리키 래리어트로 승리한다. 12월 5일 WJ의 야마구치 대회에서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12월 14일 제로-원의 양국 국기관 흥행에 야구치, 이시이, 우와노와 함께 등장. 하지만 제로-원 측에서는 하시모토 신야를 비롯. 프리인 후지와라 요시아키까지 포함하여 22인이나 되는 인원이 등장. 숫적으로 불리한 WJ 측이 패한다.

2004년 2월 29일 하시모토 신야와 유한의 싱글 매치에서 패한다. 3월 7일에는 허슬 2에 참전. 인디의 성지 가와사키 구장에서 열린 5월 5일 후유키군 프로모션의 마지막 흥행에 참전. 가네무라 킨타로와 태그 매치로 대결한다. 5월 27일에는 5월 27일에는 WJ 고라쿠엔 홀에서 행해진 아파치 군과의 전면 대항전 1탄에서 쾌승. 항쟁이 더욱 격화된다. 7월 14일에는 WJ 프로 레슬링이 3개월간 휴면에 들어갔고 7월 19~24일간 WJ 프로 레슬링 여름 휴가 레슬링 교실을 개최했다. 7월 25일 허슬 4에서는 오가가와 나오야와 태그를 결성. 허슬 포즈는 거부하지만 추후에도 허슬 참전이 예상된다. 9월 20일 허슬 5에서는 리키쉬와 리키 태그를 결성. 8월 11일에는 선수 3명과 심판 등 임원진들이 WJ 를 퇴사하면서 리키 프로를 설립한다.

초슈는 갑자기 10월 9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양국 국기관 대회에 나타나 링에서 나가타 유지와 난투를 벌였다. 10월 23일 허슬 6에서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최초로 태그를 결성한다. 10월 29일에는 도쿄 스포츠지에서 초슈와 신일본 프로레슬링세가 심한 설전을 벌였고 11월 3일에는 쵸노 마사히로의 데뷔 20주년 기념흥행에서 쵸노와 태그로 나가타 유지, 텐잔 히로요시를 꺾었다. 11월 13일에는 쵸노와 태그로 니시무라 오사무, 나가타 유지와 대전하였고 쵸노의 켄카 킥이 초슈에게 잘못 가격. 시합 후에는 쵸노에게 리키 래리어트를 작렬한다. 11월 13일에는 안티 초슈파로 유명한 오오타니와 태그를 결성. 시합 후에는 쵸노를 비롯한 블랙 뉴저팬 군단이 초슈를 급습. 12월 4일에는 사이판에서 초슈의 데뷔 30주년 기념 흥행을 가졌다. 12월 11일 초슈와 이시이의 리키 프로 군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상륙. 하루 뒤 12일에는 마카베 토우기, 이이즈카 타카시와 대전. 리키 래리어트 2연발에 이은 전갈 굳히기로 승리한다.


* 타이틀 획득 :

AJPW International Tag Team Champion (1x with Yoshiaki Yatsu)
IWGP Heavyweight Champion (3x)
IWGP Tag Team Champion (1x with Kensuke Sasaki, 1x with Masa Saito, 1x with Takayuki Iizuka)
NWF North American Tag Team Champion (1x with Seiji Sakaguchi)
PWF Heavyweight Champion
UWA Heavyweight Champion
UWA Tag Team Champion (1x with El Gran Hamada)
WWF International Heavyweight Champion

* 마지막 업데이트: 2007년 3월 14일.
* 작성자:
Cactus™ [http://grgrkk.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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