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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W 소개와 역사
(closed)




* 경기 결과 모음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 ECW 소개와 역사


익스트림 챔피언쉽 레슬링(이하 ECW)은 토드 고든에 의해 1992년 세워진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 레슬링 프로모션이며, 토드 고든을 계승한 폴 헤이먼에 의해 2001년 4월 파산을 선언했다. ECW는 스토리라인 위주로 푸쉬를 주는 경향과 충성스런 팬 기반으로 유명해졌고, 또한 다양한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루차 리브레부터 하드코어 레슬링까지. ECW의 이름은 WWE에 의해 2번 사용되었다. 2001년 7월부터 11월까지 시행됐던 인베이전 스토리라인의 부분, 그리고 2006년 6월부터 자사의 세 번째 브랜드로써.


* Tri-State Wrestling Aliance와 Eastern Championship Wrestling

 


 

원천적으로 ECW의 기원은 1991년 Tri-State Wrestling Aliance(이하 TSWA)에서 비롯되었다. 조엘 굿하트는 TSWA의 소유주였는데 1992년 그의 파트너였던 토드 고든에게 자신의 주식을 매각한다. 고든은 이후 단체의 이름을 Eastern Championship Wrestling(이하 EaCW)으로 변경했고, 당시 EaCW는 NWA의 멤버 단체였다.

EaCW는 만화에서나 볼법한 기믹들, 아이들을 위주로 한 마케팅이라는 특성을 가진 동시대 프로 레슬링 단체와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EaCW는 18세에서 35세 사이의 남성을 팬으로 확보하려고 했고, 그에 연관지어 당시 프로 레슬링에서 금기 사항으로 여겨졌던 것을 과감히 깨부쉈다. 그 예로는 날붙이로 피를 내는 것, 남성 레슬러가 여성을 두들겨 패는 것 등이 있었다. 폴 헤이먼은 이 당시 EaCW에서 단체를 그러한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에 주력했다.


* NWA에서 벗어나다



 

1994년 짐 크로켓은 토드 고든에게 8월 27일 ECW 아레나에서 N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쉽 타이틀 토너먼트를 열 생각이 없냐고 의중을 떠보았고 이에 당시 NWA 회장이었던 데니스 코랄루쪼는 크로켓과 고든이 타이틀을 독점하려는 수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짐 크로켓은 1980년대 이미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다) 따라서 코랄루쪼는 즉시 NWA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니 토너먼트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통보했다. 고든은 이에 코랄루쪼가 권력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여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계획대로라면 쉐인 더글라스는 2 콜드 스콜피오와 경기를 가져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었는데, 고든은 더글라스에게 타이틀을 따자마자 타이틀을 버릴 것을 지시했다. 물론 그 행동의 의미는 NWA를 탈퇴하는 것이었다. 계획은 그대로 실행되었고, 더글라스는 타이틀을 내던져버린 뒤 자신은 더 이상 죽은 프로모션 따위의 챔피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선언하고, EaCW 헤비급 타이틀을 들어올린 뒤 이것만이 진정한 세계 헤비급 타이틀이라고 선언한다. 더글라스의 이 선언에 이어 폴 헤이먼도 NWA는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는 구식이며 EaCW는 스스로 이정표를 세우기를 원하고, 또한 단순히 인디 단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길 원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대중성



 

EaCW가 NWA에서 탈퇴한 뒤 EaCW는 단체의 이름을 Extreme Championship Wrestling(이하 ECW)으로 변경했고, 이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정통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난 기술들, 논란을 일으킬만한 스토리 라인들, 난무하는 피 등은 18세부터 35세 사이의 많은 프로레슬링 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게 만들었다. ECW는 조그만 지역에서만 머물렀지만, 그 광대한 팬 기반은 1990년대 후반 거의 컬티즘에 이르기까지 했고 거대 프로레슬링 단체인 WWF와 WCW에 '하드코어 스타일' 에 대한 영감을 주기까지 했다.



 

ECW는 다양한 경기 스타일을 보여줬고, 하드코어 경기와 쓰리 웨이 댄스 경기를 대중화시키기도 했다. ECW는 항상 비주류 혹은 WWF와 WCW 같은 거대 단체의 대안이 되기를 바랬다. 하드코어 경기에 더해서, ECW는 이미 해외에서는 흔한 테크닉 위주의 레슬링을 북미 레슬링 스타일의 대안으로써 선보였다. 국제적인 프로레슬러인 에디 게레로, 랜스 스톰, 크리스 벤와, 딘 말렌코는 ECW의 테크닉 위주 레슬링의 견고한 축이었다. 레이 미스테리오 주니어, 사이코시스, 코낸, 후벤투드 게레라는 북미 레슬링 단체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루차 리브레 스타일 경기를 ECW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쉐인 더글라스, 타미 드리머, 레이븐, 더 샌드맨, 캑터스 잭, 테리 펑크, 사부, 마이키 윕렉, 태즈 등의 레슬러들은 거대 단체들에서는 너무 위험한 선수들로 간주되었고 이들은 이에 ECW에서 기회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또한 새롭게 ECW로 단체명을 변경했을 때 많은 도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ECW의 간판 대립이었다고 할 수 있는 타미 드리머와 레이븐 간의 대립은 많은 ECW 레슬러들이 개입했고 2년 반을 넘게 지속되었다.



 

다른 특기할만한 대립으로는 레이븐과 더 샌드맨 간의 대립이 있었는데, 둘 간의 대립에서는 레이븐이 샌드맨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세그먼트가 포함되어 엄청난 논란을 불어일으키기도 했다.

* 두 거대 단체와의 관계

 


 

폴 헤이먼은 ECW의 대중성의 정도가 늘어난 뒤 두 거대 단체인 WWF와 WCW가 ECW의 아이디어를 가져다쓰고 ECW의 인재를 데리고 가려고 한다고 믿었다. 폴 헤이먼의 주장대로라면, ECW는 RAW와 Nitro의 월요일 밤 전쟁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WWF는 ECW와의 관계에서 경쟁력있는 기믹을 채용하는 댓가로 WWF의 선수들을 ECW에 빌려주기도 했고 거기에 더해서 상당한 기간 동안 헤이먼에게 자금 보조를 해주기도 했다. WCW는 자단체에서 ECW가 단체명으로 언급되는 것조차 거부했고 만약 그런 경우가 발생할 경우 '일류 인디 단체' 등으로 언급하곤 했다. 방송 상에서는 그렇게 깔보곤 했지만, WCW도 역시 ECW에 선수들을 제공하곤 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ECW에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려는 목적으로만 이루어지곤 했다.

빈스 맥마흔은 폴 헤이먼에게 태즈, 스티브 오스틴, 믹 폴리, 2 콜드 스콜피오, 더들리 보이즈 등이 ECW를 떠나 WWF로 올 때 적절한 보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폴 헤이먼은 에릭 비쇼프에 대해선 마이키 윕렉, 레이븐, 더 샌드맨, 크리스 벤와, 딘 말렌코, 에디 게레로, 페리 새턴, 스티비 리차즈, 키드 캐쉬, 시드 비셔스, 마이크 어썸, 쉐인 더글라스, 랜스 스톰, 크리스 제리코 등이 WCW로 이적할 때 보상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 폴 헤이먼, 토드 고든으로부터 ECW를 사들이다



 

1996년, 토드 고든은 부커진의 수장인 폴 헤이먼에게 ECW를 매각한다. 그 뒤 고든은 단순히 스토리라인 상의 커미셔너로 남았고, 그런 커미셔너 역할을 수 년 정도 한 뒤 ECW를 떠난다. 고든이 떠난 이유는 고든 자신이 방송에서 가족 때문에 프로레슬링계에서 은퇴해야한다는 것으로 설명을 완료했다. 하지만 당시 루머는 고든이 헤이먼에게 해고되었다는 내용으로 떠돌았는데, 루머 상에서 고든의 해고 사유는 바로 경쟁 단체인 WCW가 선수를 쉽게 포섭할 수 있도록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었다. 몇 년 뒤 고든은 인터뷰에서 WCW를 위한 스파이였다는 내용의 루머는 단지 각본이었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 단체 교류



 

스토리라인에 있어서는 아주 민감한 빈스 맥마흔은 1995년 King of the Ring(이하 KoR) 이벤트를 계기로 ECW를 의식하게 되었다. 1995년 KoR은 ECW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는데, 메이블과 사비오 베가의 경기 중 관중들은 경기가 지루해지자 화를 내며 "ECW" 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1996년 9월 22일, IYH: Mind Games 이벤트가 다시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게 되고, 이 이벤트에는 심지어 ECW 선수들인 타미 드리머, 더 샌드맨, 태즈와 오너인 폴 헤이먼이 자리잡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 중 샌드맨은 사비오 베가와 브래드쇼의 스트랩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 맥주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는 빈스와 헤이먼의 동의 아래 이뤄진 것이었고, 빈스는 필라델피아에서 ECW가 차지하는 위상을 눈치채고 이들을 이벤트 홍보의 수단으로써 삼았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낳았다.



 

1997년 2월 24일, ECW는 더 나아가 뉴욕 맨하탄 센터에서 열린 RAW에 나타나 그들의 첫 번째 PPV를 홍보함과 동시에 3개의 경기를 펼쳤다. 중계석에는 폴 헤이먼이 빈스 맥마흔, 제리 롤러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이벤트에는 상당히 많은 ECW 팬들이 입장했으며 경기가 재미없으면 가차없이 "지루해!" 라는 연호를 퍼부었다. 반면 ECW 선수들에게는 ECW 팬들만이 할 수 있는 함성을 보여주며 WWF만을 즐기는 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ECW의 난입은 WWF 뿐만 아니라 제리 롤러가 운영하던 United States Wrestling Association(이하 USWA)에도 있었다. 롤러는 방송에서 ECW를 헐뜯었고, 롭 밴 댐과 사부 같은 레슬러들에게 반(反) ECW 전쟁에 동참하라고 권유를 했다. 1997년 동안, ECW의 선수들은 USWA에 자주 나타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했다.

* Xtreme Pro Wrestling(이하 XPW)과의 갈등


2000년, ECW는 미국 서부에 데뷔하고, 연중 여름 PPV인 Heat Wave를 LA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LA는 XPW가 자리잡고 있었고, 오너인 랍 블랙은 이에 앞열 여섯 좌석을 구매하여 XPW의 핵심 인물들에게 나눠주었고, 그들이 할 일은 ECW가 그들의 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스토리라인이 아니었으며,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 그들은 모두 XPW 로고 티셔츠를 입고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이는 즉시 ECW 보안 요원과 타미 드리머의 눈길을 끌었고, 보안 요원은 즉시 XPW 그룹을 빌딩 밖으로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주차장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이 싸움에는 ECW 레슬러들과 XPW 링 관계자들이 관계되었다. XPW 레슬러들은 이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ECW 레슬러들은 쉽게 XPW 링 관계자들을 압도했고 그들 대부분이 피칠갑이 되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XPW 디바인 크리스티 미스트가 ECW 디바 프랜신에게 손을 대서 이런 싸움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었고 이에 프랜신은 자신은 XPW 관계자는 물론 그 상황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후 추가로 목격자들이 나타나며 그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당시 아나운서였던 조이 스타일스는 XPW 그룹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이후 링 사이드에 있던 XPW 그룹은 더 미사이아, 키드 카오스, 수프림, 크리스티 미스트, 홈리스 지미, 크리스 클로스로 밝혀졌다.


* TNN과의 TV 계약



 

1999년 8월, ECW는 TNN과의 3년 계약을 통해 전국적으로 자단체의 쇼를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광고가 전무하고, 예산도 굉장히 낮게 배정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ECW는 TNN에서 가장 시청률을 높게 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2000년 10월, TNN은 RAW와 계약하면서 ECW와의 계약을 해지한다. 지금까지도 폴 헤이먼은 ECW 몰락의 주 원인이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 파산



 

TNN과의 계약이 해지된 뒤 ECW는 몇 달 동안 새로운 전국 규모의 계약을 맺기 위해 진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 12월 30일 마지막 ECW Hardcore TV가 방송됐고, 2001년 1월 7일에는 마지막 PPV인 Guilty as Charged 2001이 개최되었다. Living Dangerously 2001도 원래는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재정 문제로 취소되었다. 이후 WWF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헤이먼은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2001년 4월 4일 부로 결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다. 헤이먼은 이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회사가 파산 위기이며 그들에게 봉급을 지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되었다.



 

파산 당시 회사의 자산은 138만 5천 5백불이었으며 부채는 888만 1천 4백 35불 17센트였다. ECW의 파산은 그들과 관계하던 선수들과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프로덕션 회사들, ECW가 운영하던 빌딩들, ECW와 거래를 하던 방송국들, 여행 대행사들, 전화 회사들, 변호사들 등에 피해를 주었고 이 영향은 엄청났다. ECW가 레슬러 및 관계자들에게 지불해야할 돈은 다양했는데 사부의 경우 단지 1불이었으며 스티브 코리노의 경우는 몇 백불이었다. 물론 이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할 선수들 및 디바들, 링 관계자들도 있었는데 롭 밴 댐의 경우 15만불, 타미 드리머의 경우 12만 5천불, 조이 스타일스의 경우 5만불, 쉐인 더글라스의 경우 4만 8천불, 프랜신의 경우 4만 7천 8백 75불이었다.

* 유산



 

ECW는 미국에 테크닉 및 타격 위주의 일본 스타일 레슬링, 그리고 루차 리브레 스타일 레슬링을 전파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두 거대 단체에 프로레슬링의 흐름을 주도한 스타들을 제공했다. 프로레슬링에 가히 혁명을 불러왔다는 스티브 오스틴은 WCW에서도 활동하긴 했으나 자신의 경력의 시작점은 ECW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예를 들 수 있다.



 

ECW는 이외에도 1990년대 후반 논란이 될만한 스토리라인 및 기믹(예를 들자면 성인 취향의 스토리라인 및 기믹)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WCW에서 철저하게 성인 취향으로 흘렀던 nWo의 스토리라인, 성인 유머와 성인을 위한 스토리라인, 하드코어 경기로 대표되는 1997년부터 시작되어 1999년까지 지속되었던 WWE의 애티튜드 시대는 ECW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많은 팬들이 믿고 있고 동시에 관계자들은 시인하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ECW의 열광적인 팬 문화일 것이다. ECW의 팬들은 이벤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채널 바꿔!", "(선수에게)넌 레슬링을 할 수 없어!", "지루해!", "(선수에게)너희 둘 다 똥이야!", "엿이나 처먹어라!", "테이블 가져와!", "우린 테이블을 원해!", "오 젠장!(Holy shit!)" 등의 구호를 즉석에서 만들어 연호했고 당연한 귀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벤트 참가에도 적극적이었다.(예를 들면, 링으로 의자를 던지라면 즉석에서 던져주고, 주변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을 들고와 선수에게 넘겨주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 등) 이러한 팬 문화는 WWF와 WCW는 물론 인디 단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같거나 유사한 형태로 수 많은 단체에서 지속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하는 ECW가 만들어낸 경기들이다.

* Barbed Wire Match
* Flaming Tables Match
* Singapore Cane Match
* Stairway to Hell Match
* Three-Way Dance
* Mexican Death match
* Taipei Death Match


* ECW 관련 대형 사건들


1. 십자가 처형 사건
 



 

1996년 레이븐과 샌드맨이 대립을 하고 있을 때, 레이븐은 샌드맨의 아들을 세뇌해 자신을 따르게 만들었다. 어느 날 샌드맨은 레이븐을 물리치고 아들을 끌어안고 포옹했으나, 레이븐은 아들 앞에서 샌드맨을 죽도로 후려쳐 기절시켰다. 이어 레이븐의 수하인 블루 미니와 스티비 리차즈가 목재로 된 거대한 십자가를 들고 나왔고, 샌드맨을 그 위에 눕힌 뒤 철사로 묶어 십자가형에 처했다. 이 이벤트에는 당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커트 앵글이 손님으로 나와 링에서 인사를 했었는데, 앵글은 이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고, 만약 방송에 자신이 나오면 법적으로 고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열광적인 ECW 관중들은 이 순간에는 쥐죽은 듯이 침묵했고, 레이븐은 악역답지 않게 링으로 나와 십자가 처형과 관련되어 사과를 남겨야했다. 하지만 이 사과도 정중한 태도로 행해진 것이 아니었으며, 레이븐은 이 사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려던 것이 아니라, 샌드맨을 모욕하려던 것이었으며, 종교적인 상징이 아닌 예술적인 관점에서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남겼다. 또 다른 당사자인 샌드맨은 훗날 이에 대해 무슨 문제가 있냐며 길길이 날뛰었고 악역인 레이븐이 링에 나가 사과함으로써 세그먼트가 망가졌다며 분노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자신이 힘이 있었다면 레이븐의 사과를 막았을 것이며, 언더테이커가 스티브 오스틴을 십자가와 비슷한 구조물에 묶어 공중에 매단건 비슷한 맥락에서 당시 자신들의 행동과 뭐가 달랐냐며 따지기도 했다. 어쨌든 관련해서 대중에게 이 사건을 담은 장면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WWE에서 ECW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이름의 DVD가 나오기 전까지.


2. 매스 트랜짓 사건
 



 

매스 트랜짓 사건은 폴 헤이먼이 ECW에 굉장한 타격이었다고 ECW의 부상과 몰락 DVD에서 말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ECW의 첫 PPV인 Barely Legal이 한시적으로나마 취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Barely Legal에서, 액슬 로튼/디본 더들리는 더 갱스타스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기로 되어있었으나, 로튼은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급하게 쇼를 출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고심하던 헤이먼 앞에 에릭 쿨라스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쿨라스는 자신을 19세라고 소개했고, 킬러 코왈스키로부터 수련을 받았다며 관련 서류를 헤이먼에게 보였다. 헤이먼은 쿨라스를 로튼의 대체자로 정했고, 쿨라스는 버스 기사 복장을 하고 매스 트랜짓이라는 이름으로 링에 올라섰다. 갱스타스의 일원이었던 뉴 잭은 예정된대로 트랜짓에게 블레이드 잡을 했고, 트랜짓은 이로 인해 피를 철철 흘렸다. 뉴 잭은 마이크를 붙잡고 빈스 맥마흔과 에릭 비쇼프를 욕하며 자신과 얽히면 이렇게 죽을 때까지 피를 흘리게 된다고 외쳤고, 관중들은 이에 흥분했으나 PPV 제공사인 뷰어스 초이스(현재의 인디맨드)와 리퀘스트 TV는 이를 너무 폭력성이 짙다고 판단, PPV 자체를 취소시켰다. 이후 ECW와 뉴 잭은 에릭 쿨라스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배심원들은 ECW와 뉴 잭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은 쿨라스가 19세가 아닌 미성년인 17세였고, 킬러 코왈스키로부터 수련을 받았다는 것도 거짓이었고, 헤이먼에게 보여준 서류도 다 위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쿨라스는 단지 레슬러가 되고 싶었던 지망생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거짓으로 험한 경험을 한 쿨라스는 불행하게도 몇 년 뒤 위공장문합술 시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소송을 당할 동안 PPV 관련 작업이 전부 연기되고, 헤이먼은 이로 인한 피해를 상당히 입으며 뷰어스 초이스 및 리퀘스트 TV와 접촉, Barely Legal을 결국 방송을 시킨다.


3. 뷸라 매길리큐티 임신/레즈비언 각본
 



 

1996년, 레이븐의 매니저였던 뷸라는 임신했음을 밝힌다. 레이븐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뷸라를 머저리라고 부르며 피임약을 안 먹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며 따진다. 뷸라는 이에 레이븐에게 당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일축하고, 실은 레이븐과 대립 중인 타미 드리머의 아이라고 밝힌다. 뷸라는 이후 드리머와 함께 행동하는데, 같은 해 Hostile City Showdown 쇼에서 쉐인 더글라스가 드리머에게 뷸라는 임신한게 아니고, 바람을 피고 있다고 말한다. 드리머는 이에 더글라스를 의심하며 대답을 재촉하고, 더글라스는 레이븐의 새로운 매니저인 키모나를 지목했다. 키모나는 이에 뷸라에게 다가와 키스를 퍼부었고, 드리머는 잠시 혼란스러워한 뒤 키모나와 뷸라 둘에게 키스를 하며 "내가 둘 다 갖겠어, 나는 하드코어하다구!" 라고 말한다. ECW의 부상과 몰락 DVD에서, 드리머는 당시 이 사건이 굉장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방송을 요청한 모든 방송사에서 내팽겨치듯이 거절당했다고 언급했다.


4. 마이크 어썸 논란



 

2000년 4월, 마이크 어썸은 WCW의 Nitro에 깜짝 출연을 했다. 문제는 그가 아직도 ECW 챔피언이라는 것이었다. 어썸의 친구인 랜스 스톰은 어썸이 폴 헤이먼이 밀린 봉급을 지불할 때까지 ECW와의 새로운 계약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와 발을 맞춰 WCW의 수석 부사장 에릭 비쇼프가 어썸에게 ECW 챔피언 벨트를 WCW의 프로그램에서 쓰레기통에 버리게 만들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마치 메두사가 한 때 WWF 여성 타이틀을 WCW로 이적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는 법적인 문제와 관련이 되어있었고, WCW는 어썸이 ECW 챔피언 벨트를 가지고 Nitro에 나타나는 것을 삼가하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썸을 ECW 챔피언으로 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어썸의 보상 문제 등이 해결되어 어썸은 WCW에 고용된채로, 하지만 ECW 챔피언인채로 2000년 4월 13일 ECW의 이벤트에 등장했고 타이틀을 태즈에게 잃었다. 아이러닉하게도, 태즈도 당시 WWF에 고용된 상태였다.


* 참고: 위키백과 / 작성: Gillberg [
blackwil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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