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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번역한 글은 일본의 프로레슬링 라이터로 미국 프로레슬링계에 능통한 후미 사이토 주간 SPA!에 연재 중인 '후미 사이토의 프로레슬링 강좌별책 레전드 100'의 12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본편 11번째 시간으로, 한때 미국 대표 단체 중 하나로 군림했던 'AWA'의 실력자였으나 판단 미스의 경영으로 안타깝게 단체를 사라지게 만든 밴 가니아에 대해 다뤘는데,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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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 사이토의 프로레슬링 강좌별책 레전드 100' 제11화는 '밴 가니아.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AWA의 제왕'' 편

(일러스트레이션: 카지야마 Kazy 요시히로)




프로레슬링에 엘리트 코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밴 가니아가 걸어온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 재학 중에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복무했지만, 대학 복학 후에는 미식축구와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활약.


1948년에 런던 올림픽에 파견 (자유형 191파운드급 보결. 토너먼트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귀국) 되었고, 이듬해인 1949년에는 AAU 전미 선수권 우승. 1948년, 49년에는 NCAA 선수권에서 2년 연속 우승.


프로 미식축구팀인 시카고 베어스, 그린베이 패커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3구단으로부터 스프링 캠프 참가 요청을 받았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레슬링의 프로로 전향한다고 밝혔다.



데뷔한지 1년 후, 리로이 맥거크 (Leroy McGuirk) 의 은퇴로 공석이 되어있던 NWA 세계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새니 마이어스 (Sonny Myers) 를 물리치고 챔피언 등극 (1950년 11월 13일. 오클라호마 주 털사).


그로부터 3년 후, 이번엔 매주 토요일 밤에 미국 전역에 중계된 프로레슬링 방송 '레슬링 프롬 매리골드 가덴 (지금은 사라진 두먼 네트워크에서 방송)' 의 주역으로서 초대 US 헤비급 챔피언에 인정되었다 (1953년 9월 3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


이 US 헤비급 타이틀의 신설에는 NWA 세인트루이스 (샘 머시닉 파) 와 NWA 시카고 (프레드 콜러 파) 의 정치적 대립이란 배경이 있었다.


US 헤비급 타이틀, 정식으론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 웨이트 챔피언'이라는 명칭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챔피언이란 이미지를 안게된다.


미국에서 최고라는 건 세계에서도 최고라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야구의 메이저 리그 월드 시리즈처럼 스포츠 세계에서 미국 국내의 넘버 1을 정하는 시합엔 이 '월드'가 자주 쓰인다.



1950년대 전반에 미국 전역을 열광시킨 흑백 영상의 프로레슬링 방송 '레슬링 프롬 매리골드 가덴'의 얼굴이 된 가니아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이란 '월드 챔피언'으로서 WWE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링에 올랐다.


빈스 맥맨 시니어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프로모트 권리를 차지하는건 1956년 11월의 일로, 그 이전의 뉴욕 시장은 여러 프로모터가 경합하는 '자유시장'이었다.


시카고의 대 보스 프레드 콜러는 TV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힘으로 뉴욕 진출을 꾀했다.


옛날 신문기사에 따르면 1953년 3월 24일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흥행 (프로모터는 찰스 존스턴 (Charles Johnston)) 의 메인 이벤트는 루 테즈 vs 안토니오 로카의 싱글매치였고, 같은 해 12월 14일에 같은 곳에서 열린 흥행 (프로모터는 프레드 콜러) 의 메인 이벤트는 카니아 vs 로카의 싱글매치가 되었다.


관객에겐 이렇다할 설명 없이, 이 해 10월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흥행의 챔피언만이 루 테즈에서 밴 가니아로 교대되었다.



'레슬링 프롬 매리골드'의 캐스트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콜러 버젼 흥행은 1955년 12월까지 계속되지만, 1949년부터 6년 동안 이어진 인기 방송의 종료와 함께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하락해 매디슨 스퀘어 가든도 1955년 12월부터 이듬해 1956년 11월까지 휴업. TV를 통한 프로레슬링 붐은 끝났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북부, 중서부의 유력 프로모터는 가니아가 루 테즈를 물리치고 N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는 시나리오를 '획책'했다.


NWA 내부 분열로 챔피언 벨트는 테즈에게서 딕 허튼, 허튼에서 팻 오코너로 이동을 반복했지만, 가니아를 푸쉬하는 그룹은 NWA를 탈퇴해 새로운 단체 AWA (American Wrestlig Association) 가 만들어지게 된다.


가니아는 우선 '루 테즈 계보'의 세계 챔피언인 에드워드 카펜티어를 물리치고 새롭게 만들어진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1958년 8월 9일.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 이것이 훗날 '오마하 AWA'로 분류되는 다른 분파의 기원이다.



가니아는 미네아폴리스의 프로모터였던 토니 스티카 (NWA의 발족인 중 한 명) 로부터 흥행회사 '미네아폴리스 복싱 & 레슬링 클럽'을 사들여 1960년 봄에 정식으로 AWA를 설립했다.


AWA는 세인트루이스의 NWA 본부와 NWA 세계 챔피언 오커너에 대해 '90일 이내에 가니아와 대결할 의무가 있다'는 문서를 보냈지만, NWA 측이 이를 무시하여 가니아는 같은 해 8월 16일부로 초대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이 시점에서 '오마하 AWA'와 '미네아폴리스 AWA'는 아직 다른 단체로 활동하고 있었고, 가니아는 2개의 챔피언 벨트를 나눠 쓰며 두 곳의 토지에서 두 갈개의 장편 드라마를 동시 진행시켰으나, 그때의 디테일은 3년 후인 1963년에 '미네아폴리스 AWA'가 '오하마 AWA'를 흡수합병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된다.



가니아는 링 위에선 세계 챔피언으로서, 링 밖에서는 오너 프로모터로서 약 30년에 걸쳐 AWA의 제왕의 자리에 군림했다.


흥행 구역은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카고 (일리노이 주), 밀워키 (위스콘신 주), 아이오와 주, 노스 다코타 주, 사우스 다코타 주,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콜로라도 주 덴버, 라스베가스 (네바다 주) 로 확대해 1980년대 전반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도 지부가 만들어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미국 레슬링 비지니스는 NWA, AWA, WWE의 메이저 3단체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가니아는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인재를 발굴하는데 열심이었다.


뮌헨 올림픽 역도 대표선수였던 켄 파테라, 아마추어 레슬링 대표 선수인 크리스 테일러 (고인)을 스카웃. 이란에서 망명해와 미국에서 AAU 선수권에서 우승한 카즈로 바지리 (아이언 시크) 도 가니아 도장 출신이었다.



가니아는 1981년 5월, AWA 세계 타이틀을 보유한채로 32년 동안의 현역생활에 피리오드를 찍었다.


'가니아 부재'가 된 1980년대 전반의 AWA에서 예기치 못한 붐을 일으킨 것은 헐크 호건이었다.


가니아는 호건에 대해선 '영화에 출연한 체격이 큰 젊은 선수'라는 인식만 갖고 있었다.


영화 '록키 3'에 출연한 것 이외에 이렇다할 실적이 없던 호건이 스타디움 규모의 관객 동원력을 지닌 슈퍼스타라는 현실을 가니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호건은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연간 계약 스케쥴을 소화하며 약 2년 동안 AWA에 재적했다.


호건 vs 닉 복윙클의 AWA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 호건 vs 제시 벤츄라의 싱글매치가 각지에서 2만명급 대규모 관객을 동원했지만, 가니아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호건의 상품가치를 과소평가했다.


아마추어 레슬링 출신인 가니아에게 있어 호건은 프로 운동선수라기 보다는 좋아할 수 없는 타입인 엔터테이너였다.



호건에 대한 가니아의 평가가 옳았을지, 옳지 않았을지는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호건은 AWA가 싫지 않았고 장래에는 단체 프로듀서의 포지션까지 맡고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니아는 호건과의 대등한 파트너쉽을 원치 않았다. '두먼 세대'인 가니아는 케이블 TV가 무엇인지 학습하려 하지 않았고, '불가침 조약'을 맺었을터인 WWE가 미네아폴리스에 뛰어드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다.



1983년 12월, 호건은 숙박하던 도쿄의 호텔에서 가니아에게 "이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전화로 뜻을 알렸다.


가니아는 호건이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건의 시합이 메인 이벤트라고 크리스마스 쇼의 선전을 계속했다.



호건이 아이언 시크를 물리치고 WWF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건 그로부터 한달 후의 일이었다 (1984년 1월 23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WWE의 미국 전국 진출 계획에 가장 큰 피해를 받은건 AWA였다. 빈스 맥맨은 AWA로부터 호건, 매드 독 바숑, 켄 파테라, 제시 벤츄라, 애드리언 아도니스, 매니저인 바비 히난, 인기 아나운서 진 오클랜드 등을 전부 빼았겼다. 가니아는 '인의없는 싸움'에서 패했다.



밴 가니아 -본명 라반 클라렌스 가니아- 는 2015년 4월 27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 폴의 재활 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89세의 나이였다.




*프로필: 밴 가니아(Verne Gagne)


1926년 2월 26일, 미네소타 주 로빈즈 델 출생.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 1949년도 NCAA 전미 선수권 우승 후 프로로 전향.

1960년, AWA를 설립.

특기 기술은 슬리퍼 홀드, 코크 스크류식 드롭킥.

1981년, AWA 세계 타이틀 (통산 11번 차지) 을 보유한채로 55살의 나이로 은퇴.

1991년, AWA는 파산.




*원문 & 사진출처: https://nikkan-spa.jp/1449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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