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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2002년 이후 WWE의 시대 구분

작성자: sfdㄴㄹㅇ 등록일: 2017.08.12 12:09:32 조회수: 562



얼마 전에 WWE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대는 무엇인가요?'라는 제목의 설문 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그 설문 조사에 따르면 WWE의 공식적인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골든 에이지.



90년대 초반 이후 90년대 중반 까지 뉴 제너레이션 에라.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에티튜드 에라.




2002년부터 08년까지 루쓰리스 어그레션 에라.




2008년에서 2013년까지 PG 에라.



2014~2016년도까지 리얼리티 에라. 





2016년도부터 지금까지 뉴 에라라는 것입니다.





저건 말도 안 되는 구별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 트리플 H가 집권한 다음에 2005년에 바티스타한테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기나 긴 악역 챔피언의 집권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2005년에 존 시나와 바티스타는 진짜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는 무적 선역의 시대를 열었죠. 저 시대를 구분되지 않은 하나로 보는 게 가능할까요?  2002~2008년은 그냥 한 시대라고?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PG 시대가 새로 열렸다는 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때 시청 등급이 PG로 하향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WWE의 흐름 자체가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2008년 말에 WWE는 블러드 잡 같은 것에 훨씬 더 예민해졌다고 합니다. 2008년 배쉬만 해도 블러드 잡이 그냥 허용되었지만, 2008년 사이버 선데이 다음 날 뤄에서 열린 케이지 매치에서 바티스타가 블러드 잡을 했을 때, 빈스 맥맨은 분노해서 어마어마한 벌금을 매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더테이커, 트리플 H, 숀 마이클스 같은 선배들, 그리고 에지, 바티스타, 존 시나, 랜디 오튼 같은 현역들이 메인을 주름 잡던 당시의 추세엔 별 다른 변화가 없죠.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별 다른 구별이 없다면, 2004년과 2005년 사이엔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에티튜드 에라 시절, WWE에서는 위클리 쇼가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에서 '에티튜드'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5HUAw-BKM




2002년 5월 2일 heat의 풀 동영상입니다. 저기에서도 오프닝 동영상에서 에티튜드라는 단어가 나오죠. 




그렇다면 WWE의 공식적인 분류에 따르면 2002년 5월까지만 해도 에티튜드 시대는 계속 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근데 재밌는 건 팬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겁니다. 전 저 당시를 실시간으로 본 많은 팬들이 '오스틴이 턴 힐했을 때 에티튜드 에라가 끝났다'고 말하면서 시대 구별을 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이게 한 두 명이 아니라, 꽤나 많은 팬들이 어떤 집단적인 무의식을 가진 것처럼 저렇게 말했습니다. 2002년은커녕 인베이젼도 에티튜드 시대의 일부분으로 치지 않은 거죠. 




2002년 이후도 그렇게 팬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시대를 구별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http://youtu.be/7hIP3CKaAF8




2002년 빈스 맥맨의 세그먼트 동영상입니다.



저기에서 빈스 맥맨은 선수들을 불러모아다 놓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다? 가차 없는 공격성이다!' 라고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저 가차 없는 공격성, 루쓰리스 어그레션은 시나가 데뷔전에서 한 말로 많이 회자됩니다. 존 시나는 빈스 맥맨이 저때 썼던 표현을 의식적으로 인용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은 스티브 오스틴과 락이라는 대형 스타 두 명이 모두 WWE를 떠난 시기입니다. 따라서 시대 구별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고, 사람들은 2002년부터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가 시작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 당시에 브록 레스너와 트리플 H가 각자 다른 브랜드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트리플 H가 2002~2005년까지 행보를 보면 기본적으로 비겁한 악당이었죠. 지역구 레슬링이 살아 있던 80년대에 NWA에서 월드 챔피언은 지역구에서 사랑 받는 고향 출신의 영웅을 상대로 고전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는 얘기를 본 적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챔피언은 벨트를 유지하고 다른 흥행이 있는 지역구로 가고, 고향에서 싸웠던 영웅은 '졌지만 잘 싸웠다'고 팬들에게 박수 받으면서 더 사랑 받게 되는 구조였다고 하죠. 릭 플레어가 바로 그런 악역 챔피언의 전형이었다고 합니다. 트리플 H 역시 기본적으로 그런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커 T처럼 모멘텀이 있는 선수한테 제때 패배를 하지 않아서 선수들 모멘텀을 끊어먹었다는 비판이 따르지만, 바티스타한테 패배할 때까지 트리플 H의 패턴은 '자기보다 강한 도전자를 상대로 질 듯 말 듯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는' 패턴을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스맥다운의 상황은 어떨까요? 2002년에 브록 레스너는 메가 푸쉬를 받으면서 락의 뒤를 이을 차세대 슈퍼스타로 대우 받았습니다. 하지만 03년도 말쯤에 브록 레스너의 역할은 트리플 H와 비스무리하게 악역 챔피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죠. 폴 헤이먼은 스맥다운의 로스터를 모두 다 불러다놓고 브록 레스너의 도전자를 정하겠다고 하고, 그 도전자는 브록 레스너를 상대로 '잘 싸웠지만 안타깝게 패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003년 말에 위클리 쇼에서 크리스 벤와는 브록 레스너에게 도전할 권리를 따냈음. 크리스 벤와는 브록 레스너를 상대로 분투하다가 브록의 반칙으로 전세가 뒤집히고, 벤와는 브록 락에 기절하면서 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벤와는 브록 락에 탭을 치지 않으면서 '끝까지 투혼을 보여준' 이미지를 강조하게 됐습니다.




레이 미스테리오 역시 2003년에 고향에서 브록 레스너에게 도전한 적 있습니다. 레이 미스테리오는 고전했지만, 적어도 벌레처럼 압살 당하진 않았고, 나름대로 브록 레스너에게 공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브록 레스너도 레이 미스테리오의 공격을 잘 셀링해줬고. 팬들이 그 경기를 본 다음에 언더독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호감을 품긴 충분한 내용이었죠.





그리고 브록 레스너가 WWE를 떠난 다음에 그 뒤를 이어서 JBL이 거의 일 년 동안 악역 챔피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는 뭐 뤄 쪽하고 별 다른 차이가 없죠.




그리고 2005년에 존 시나와 바티스타가 양대 브랜드에서 챔피언이 되고, JBL과 트리플 H를 이어진 싸움에서까지 완패시키면서 완전한 세대 교체를 이뤄냅니다. 이때부터 WWE는 악역보다 선역이 득세하는 구조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02~04년과 05년도 이후를 대조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트리플 H를 보는 겁니다. 트리플 H는 저 두 시대에서 모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그 방법은 막대히 다릅니다. 02~05년도에 트리플 H는 온갖 비겁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챔피언쉽을 지키는 악역이었다면, 06년도 이후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완벽한 선역으로 악역들을 무참피 줘패고 다녔습니다.




이 시절 WWE는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언더테이커라는 세 명의 레전드. 그리고 존 시나, 바티스타, 에지, 랜디 오튼이라는 네 명의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바티스타는 젊은 선수는 아니지만 이미지가 새로운 시대를 대표한다는 의미). 그리고 레전드 쪽에서 오히려 젊은 선수를 압도하는 이미지로 그려지죠.




숀 마이클스는 레슬매니아에서 존 시나에게 패했지만 한 달 뒤에 리벤지. 트리플 H는 존 시나를 2008년 나오챔, 2009년 뤄에서 두 차례 이깁니다. 언더테이커는 바티스타를 상대로 대등하거나 한 수 위인 것으로 묘사됩니다. 랜디 오튼은 트리플 H나 숀 마이클스와 대립할 때 허구한 날 위클리 쇼에서 맞는 걸로 뤄가 끝났기 때문에 '바닥을 사랑하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에지 역시 악역으로 트리플 H,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를 깔아주는 위치였죠. 트리플 H에겐 2008년에 PPV에서 한 번 패했고, 언더테이커야 뭐 명대립이었지만 결국에 에지가 패했고, 숀 마이클스 vs 에지 같은 경우엔 2007년도 뤄에서 한 번 열린 적 있었습니다. 저때 에지는 스맥 다운의 월드 챔피언이는데, 숀 마이클스가 걍 허무하게 에지를 이겨버리더군요.




그런데 에지, 바티스타, 존 시나, 랜디 오튼 네 명도 레전드에겐 한 수 밑일지 몰라도 일반 로스터 상대로는 깡패 같은 위상을 자랑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레전드와 일반 로스터 사이의 격차는 얼마나 컸을까요?


 


이 시절의 특징은 WWE가 새로운 얼굴을 거의 키워내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존 시나, 바티스타, 에지, 랜디 오튼 모두 다 05~07년도 사이에 서서히 메인 이벤트로 올라온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저 이후로 신인 선수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칼리토, MVP, 미스터 케네디, 코피 킹스턴, 존 모리슨 등등 사람들이 한 번쯤은 기대를 걸어본 선수들인데 모두 다 미끄러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선수가 상승세를 가진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흥분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쟤도 곧 기존 선수들한테 잡아 먹힐 조연에 불과하겠지' 이런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저 당시에 WWE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관된 상승세를 가지고 탑으로 치고 올라간 선수가 있었습니다. 제프 하디. 하지만 제프 하디는 2009년에 WWE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떠나버립니다. 제프 하디와 대립하면서 탁월한 기믹 수행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던 CM 펑크 역시 10년도부터는 '선역을 깔아주는' 역할로 변하면서 걍 그저 그런 미드 카드 한 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0년도에 나름대로 WWE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엔 기존 선수(존 시나)의 한 끼 식사가 돼 버린 넥서스까지. 크리스 제리코가 2010년도에 WWE를 떠나고 난 다음에 외부 매체와 인터뷰에서 '빈스 맥맨한테 새로운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렇지 않았다간 WcW처럼 돼 버릴 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저 당시 WWE는 새로운 스타가 치고 올라서지 못할 악환경이었습니다.






2010년도에 숀 마이클스는 은퇴했음. 트리플 H는 쉐이머스에게 패해주고 퇴장하는 걸로 파트 타이머로 전향함. 바티스타 역시 존 시나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WWE를 떠남. 그 다음 해에 에지 역시 은퇴했음. 언더테이커는 10년도 말에 케인과 대립을 끝으로 더 이상 풀 타이머로 활동하지 않게 되었음.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존 시나. 라이벌들을 모두 떠나보낸 존 시나는 로얄 럼블에서 혼스워글과 함께 악역 선수를 능욕하다든지, 미즈를 상대로 채찍질을 하면서 I quit을 받아낸다든지(그렇게 경기를 끝낼 수 있다면 뭐하러 테이블에다가 AA를 해대면서 싸워댄 걸까요?) 하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존 시나는 다른 선수들과 너무나 큰 격차가 있어 보였고, 걍 자기 레벨에 안 맞는 필드에 들어와서 저렙들이나 괴롭혀대는 모습을 보였고, 존 시나와 관련된 각본들은 재방송을 보는 듯이 고리타분함의 절정에 차달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CM 펑크는 머니 인 더 뱅크를 앞두고 이런 고리타분함을 비틀어대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냈습니다. 존 시나가 빈스 맥맨한테서 '머니 인 더 뱅크에서 패배해서 펑크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면 넌 해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펑크는 '야, 설마 빈스가 너를 해고하겠냐? 작년에 네가 웨이드 바렛 때문에 해고 당했을 때 일주일도 안 돼서 곧장 나타난 거 기억 안 나?'라고 했죠.





2010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웨이드 바렛 vs 랜디 오튼이 열렸고, 특별 심판은 존 시나였습니다. 저때 조건이 '랜디 오튼이 승리한다면 존 시나는 해고'였습니다. 존 시나는 결국에 정의로운 신념에 따라서 웨이드 바렛의 편을 드는 대신에 해고 당하기를 선택합니다. 저 다음 날 뤄에서 랜디 오튼을 비롯한 선수들이 존 시나한테 위로를 전하고, 존 시나는 팬들 앞에서 '이제 드디어 WWE를 떠날 때가 됐네요. 마지막으로 렛츠 고 시나, 시나 썩 챈트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관중 반응을 독려하는 등, 꽤나 감동적인 프로모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존 시나는 뤄에 멀쩡히 출연했고, 하우스 쇼에서는 가면을 쓴 채 '후안 시나'라는 이름으로 출연했습니다. 저때 존 시나는 '뤄에서는 해고 당했지만 걍 놀러온' 컨셉으로 출연했고, 넥서스 관련 인물들이 눈에 뜨일 때마다 두들겨 패대서, 결국에 웨이드 바렛은 존 시나를 복귀시키고 다음 PPV에서 개쳐맞는 걸로 대립은 끝났습니다.





뭐 아예 납득이 안 가는 각본은 아니지만, 존 시나가 기껏 감동적인 은퇴 프로모를 한 의미가 다 바래버렸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CM 펑크는 저런 WWE의 후진 각본을 조롱하면서 오히려 모든 상황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었죠. WWE의 진부한 각본을 난도질해대고 있는 CM 펑크. 그리고 그런 WWE의 부정적인 부분(진부한 각본)마저 상징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WWE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남으려고 하는 존 시나. 




결국에 존 시나는 CM 펑크에게 잡을 해주고, CM 펑크는 새로운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이건 05~10년 동안 보지 못한 광경이었죠. 형식적으로 악역에 속하는 CM 펑크가 탑 페이스를 꺾으면서 챔피언이 되고 턴 페이스를 한다는 건요.




2005년 이후에 존 시나가 싱글 매치에서 클린하게 잡을 해준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제가 알기로는 2008년 나오챔과 2009년 뤄에서의 삼치. 2007년 백래쉬를 앞둔 뤄에서의 숀 마이클스. 2008년 섬머 슬램에서의 바티스타, 정도가 다입니다. 랜디 오튼은 2009년 헬 인 어 셀 기믹 매치에서 이겨본 적이 있긴 하지만 싱글 매치에서 깔끔하게 시나를 이긴 적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쉐이머스가 2009년에 존 시나를 이긴 것 역시 테이블 매치였죠. 존 시나가 싱글 매치를 깨끗이 져준 상대는 동시대 탑선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에서야 마침내 존 시나가 후발 주자한테 깨끗이 패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년 뒤에 대니얼 브라이언에게 존 시나가 깨끗이 잡을 해주기까지 하죠. 





05~10년도에 존 시나의 대립 상대들은 'WWE가 팬들한테 보여주고 싶어하는 존 시나의 이미지'를 말했습니다. 악역일지라도. 하지만 11년도 이후엔 펑크나 브라이언처럼 '존 시나로 상징되는 WWE에 대한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CM 펑크는 2011년 외부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시대의 이름을 난 리얼리티 에라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말했고, 몇 년 뒤에 저 표현은 정착되었죠.




그리고 2011년 이후에 시작한 리얼리티 에라의 특징으로는 '프로레슬러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진지한 문제로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것.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존 시나를 쓰러뜨리고 WWE 챔피언쉽을 들고 떠나겠다는' 펑크 vs 'WWE 타이틀을 빼앗기고 해고를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WWE 챔피언으로서 프로레슬링 시합을 할 권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존 시나.  




레슬매니아 28을 앞두고 존 시나는 더 락에게 말합니다. '락, 네가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WWE는 내 집이고 내 일터야. 난 손님으로 온 네가 나를 꺾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13년도에 대니얼 브라이언과 존 시나는 '프로레슬러'라는 정체성을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존 시나. 넌 언제나 링 위에 들어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재능이 있어. 카메라의 녹화를 알리는 붉은 빛이 들어오면 넌 관중을 휘어잡지.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TV를 보지 않는 이유야. 너 같은 사람들. 본질이 아닌 겉모습에 신경 쓰고, 돈과 명예를 좇지. 레슬링 그 자체가 아니라! 내 티셔츠는 네 캐치프레이즈를 패러디하고 있지. 왜냐하면 넌 레슬링의 패러디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난 패러디가 되길 원하지 않아! 난 내가 세계 최고의 레슬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레슬링을 하는 거야!"




"패러디라... 강한 단어를 쓰는군. 난 패러디가 아니다, 대니얼.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너와 같아.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예쓰나 노우를 외치고 유 캔 씨미를 외쳐주는 팬들을 위해서 이곳에 있어. 네가 그들을 대표할 때 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힘을 얻고, 다치고 지쳤어도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어. 당신들이 나를 믿어주는 만큼이나 나 또한 당신들을 믿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걸치고 있는 티셔츠, 네가 걸치고 있는 티셔츠. 결국에 티셔츠에 불과하지. 하지만 그건 성조기가 천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중요한 건 천쪼가리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가치야. 충직함. 난 적대적인 관중들 앞에 서봤고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지만 내게 충직함을 다해준 팬들이 있다는 걸 알아. 그리고 그들이 있다면 항상 이곳에서 그들의 충직함에 보답할 거야. 넌 너한테 나를 패러디라고 부를 충분한 독기가 있다고 생각하나? 너처럼 나를 비판한 이들은 줄곧 있었지. 난 그들을 위해 이곳에 있는 게 아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 12년을 바쳤지. 오늘 오후에 내가 메이크 어 위시 재단에 찾아갔을 때 오직 '유 캔트 씨미'라고 하는 동작을 보기 위해서 나를 기다려준 어린 소년 다코다를 위해서, 다코다가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마다 '네버 기브 업'이라고 말한다는 것에 감사를 표한 그 아버지를 위해서 이곳에 있지. 넌 지금 가파른 상승세에 올랐지만, 항상 너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넌 네 성공에 기뻐해야 해. 하지만 나 또한 내 성공에, 나 자신에 감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영리했으면 좋겠군. 왜냐하면 난 지난 십 이 년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오늘 날의 나를 완성해 왔으니까."







저기에서 존 시나는 무척이나 재밌는 표현을 합니다. '관중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힘이 난다.' 재밌는 사실은 저게 원래 헐크 호건의 '공식 설정'이었다는 겁니다. 헐크 호건이 관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헐크 업을 할 수 있었던 건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는 특이한 호르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WWE의 공식 설정이었다는 얘기가 있죠. 존 시나는 저 비현실적인 만화 같은 각본을 리얼리티 에라에 맞게 새롭게 해석해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든 겁니다.



대니얼 브라이언이 '레슬링을 패러디한 세계'에 불과한 WWE에서 최고의 프로레슬러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면, 존 시나 역시 자신은 프로레슬링을 통해서 삶을 완성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두 사람 다 방향은 다르지만 프로레슬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죠.






이런 프로레슬러로서 정체성의 문제는 브록 레스너 vs 존 시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2012년도에 브록 레스너와 일전을 앞두고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존 시나에게 에지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프로레슬링과 WWE는 우리 모두에게 전부였다는 거야. 하지만 브록 레스너는? 레스너가 이런 것에 관심이나 있었을 거 같아? 네가 여기에서 브록한테 패배하는 건 이 업계를 위해 피를 흘린 이들, 언더테이커, 숀 마이클스, 젠장 나한테 모욕이란 말이야! 정신을 차려!' 



2014년도에 브록 레스너의 대변인 폴 헤이먼과 존 시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죠. 






'시나, 넌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야. 넌 '렛츠 고 시나'를 외치는 사람을 대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나 썩스'를 외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마저 사랑하지. 넌 WWE 슈퍼스타가 되는 것을 사랑해. 하지만 브록 레스너가 유일하게 열정을 느끼는 일은 상대방에게서 고통을 짜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가학적인 쾌감 뿐이야. 너 역시 결국엔 브록 레스너의 희생양이, 정복물이 될 운명일 뿐이지.'



'브록 레스너는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밖에 지니고 있지 않아. 하지만 폴 헤이먼 당신은 나와 공통점을 갖고 있어. 우리는 열정이란 게 무엇인지 알아. 당신의 심장은 까맣게 타들어가 차갑게 식어 있지만, 이따금씩 그 심장을 뛰게 하는 세 글자가 있어. 당신에게 함께 싸워준 사람, 당신을 지켜봐 준 사람, 당신을 응원해준 사람이 있어. 그리고 당신과 열정을 공유했던 그 팬들이 어떤 세 글자를 외칠 때 당신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해. ECW! ECW! ECW!'



존 시나의 캐릭터는 단순히 '착한 영웅'이 아니라 '자신을 거부하는 팬들마저 대표하기를 원하는, 그만큼 WWE를 사랑하는' 복잡한 인물이고, 폴 헤이먼 역시 존 시나의 적임에도 레슬링 업계에 몸을 담아봤던 입장에서 마음 속으로 누구보다 존 시나를 잘 이해하는 인물이라는 재밌는 구도가 성립됩니다.




11년도 이후에 존 시나의 캐릭터는 더 이상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아이러니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더 현실적인 버젼의 존 시나였죠. 배트맨 캐릭터가 어린이용 만화에 나오는 유아적인 버젼과 더 어둡고 진지한 버젼이 공존한다는 것처럼, 존 시나 역시 단점과 모순이 내제된 어둡고 진지한 캐릭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때 존 시나의 가장 큰 숙적이었던 에지가 12년도에 나타나서 '존 시나에게 힘을 불어다주는 까메오' 역할을 했다는 것. 다시 생각하면 존 시나의 연대기는 저 무렵에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죠. 



 더 이상 선수들은 '존 시나에 대한 WWE의 관점'을 읊지 않고, 적극적으로 존 시나의 캐릭터에 다른 관점을 부여하려고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존 시나의 캐릭터는 더 풍요로워집니다. 2011년에 미즈와 그랬던 것과 달리, 존 시나가 뉴페이스와 붙게 되었을 때 뭔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 같은 흥분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존 시나의 프로레슬러로서 평가는 오히려 급상승합니다.




그리고 2014년에 존 시나는 브록 레스너에게 열 여섯 번의 수플렉스를 맞고 패합니다. 브록 레스너가 언더테이커를 꺾고, 저때 챔피언이 된 것은 로만 레인즈에게 벨트를 내려놓아 새로운 스타를 탄생하기 위함이었다는 게 정설이었죠.


분명히 2014년도 후반을 보면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보이는 듯합니다. 딘 앰브로스, 세스 롤린스, 브레이 와이엇이 존 시나를 재치고 PPV의 단독 메인 이벤트를 맡은 것을 보면 말이죠.




2014년 헬 인 어 셀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시대에 초점이 맞춰진 새로운 얼굴은 로만 레인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14년도 후반~지금까지 WWE에서 가장 중요하게 그려지는 인물은 오히려 브록 레스너라는 거입니다. 쉴드의 멤버 세 명 중에서 브록 레스너를 깨끗이 꺾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깨끗이 꺾은 게 문제가 아니라 브록 레스너 앞에서 모두 다 나약하게 그려졌죠.



언더테이커 vs 브록 레스너가 두 차례 PPV 메인 이벤트를 장식했는데, 이는 11~14년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존 시나 vs 락이 열렸을 때는 적어도 과거 vs 현재의 구도였습니다. 펑크 vs 브록 레스너가 열렸을 때는 파트 타이머 vs 풀 타이머의 구도였는데, 대립이나 경기의 내용을 보면 CM 펑크가 더 부각되게 그려졌지. 결국 승리는 브록이 가져갔다고 해도 말이야. 저 대립의 핵심은 펑크와 폴 헤이먼의 갈등이었고, 경기 내용도 펑크가 나름 선전한 것처럼 그려졌음.



간단히 말하면 11~14년도에 파트 타이머가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면 적어도 대립 상대인 풀 타이머와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그려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브록 레스너 vs 언데테이커가 열렸을 때는, 풀 타임 선수들이 두 사람을 뜯어말리는 엑스트라로 동원되는 등, 저 두 사람이 WWE의 핵심이고 나머지는 그들을 둘러 싼 엑스트라인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브록 레스너 vs 랜디 오튼이 열렸을 때, 브록 레스너는 랜디 오튼을 어린 애 다루듯이 처참히 패배시켰죠. 하지만 그 다음 PPV에 출연했을 때는 골드버그한테 간단히 패했죠.



브록 레스너의 계약이 조정되면서 WWE의 출연 빈도는 늘어났지만, 출연할 때마다 케빈 오웬스 같은 풀 타이머를 간단히 씹어먹는 등 오히려 풀 타이머의 위상은 처참히 박살났습니다. 16년도 섬머 슬램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을 장식한 딘 앰브로스와 돌프 지글러는 올해 로얄 럼블에서 브록 레스너한테 자버처럼 간단히 탈락 당했죠.




15~16년도 WWE는 마치 메이져 리그와 마이너 리그가 나뉘어져 있는 거 같이 느껴졌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브록 레스너, 골드버그, 언더테이커는 메이져 리그의 플레이어들이라면, 맨날 등장하는 풀 타이머들은 마이너 리그에 속한 것처럼. 때문에 올해 레슬매니아에서 테이커와 골드버그가 은퇴한 게 차라리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네요 




결국 14년도 후반 ~지금까지를 하나의 시대로 규정한다면 세대 교체에 실패해버린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빈스 맥맨이 애초에 원했던 건 로만 레인즈가 아니라 브록 레스너를 푸쉬하는 게 아녔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멜쳐는 '브록 레스너가 호건, 오스틴, 락, 존 시나 급의 대형 스타 같냐'는 질문에 '내 생각엔 그렇다'고 했죠.




그냥 14~17년도는 브록 레스너라는 아이콘을 중심으로 WWE가 돌아갔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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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 등록일: 2017-08-12 11:35
분명한건 지금은 노스토리 에라, 노잼에라, wwe독과점 에라 인건 맞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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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등록일: 2017-08-12 13:16
그러고 보면 요즘 케릭터들은 너무 개성도 없고 정체성도 모호한게 문제네요. 뭘 추구하는지 뭘 이루려는지도 모르겠고요. 각본진이나 선수들이나 그냥 손 놔버린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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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O 등록일: 2017-08-12 15:10
덕분에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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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즈 등록일: 2017-08-12 18:46
정리하자면

2002~2005 루쓰리스 어그레션 에라
2005~2010 파워이즈백 에라
2011~2014 리얼리티 에라
2014~ 무근본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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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등록일: 2017-08-12 19:03
현재는 wwe 어그로 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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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KO펀치 등록일: 2017-08-13 00:34
윗분 말처럼 현재 wwe는 캐릭터가 특성되지 않아 재미가 덜하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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