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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 소개와 역사
(closed)




* 경기 결과 모음

[1970] AWA Comiskey Park

[1985] AWA SuperClash

[1987] AWA SuperClash II

[1972] Soldiers Field

[1986] AWA WrestleRock

[1988] AWA Rage in a Cage II

[1974] Comiskey Park

[1985] AWA StarCage

[1988] AWA SuperClash III

[1976] AWA Chicago Stadium

[1986] AWA Rage in a Cage

[1989] War in the Windy City

[1980] Comsikey Park

[1986] AWA Battle by the Bay

[1989] T.Team Title Tournament

[1983] AWA Super Sunday

[1986] AWA Brawl in St. Paul

[1990] AWA SuperClash IV

* AWA 소개와 역사


AWA(American Wrestling Association)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를 중심으로 1960년부터 1991년까지 운영되던 프로 레슬링 단체였다. 단체는 버네 가니에(Verne Gagne)와 월리 카르보(Wally Karbo)에 의해 설립 되었고 독립하기 전인 1950년대에는 NWA 연맹의 한 부분 이였다.


* NWA 연맹 시절



 

초창기 NWA 설립 인사이기도 한 안톤 스테쳐(Anton Stecher)는 미니애폴리스 지역에서 1933년 이래로 복싱과 레슬링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1952년에 월리 카르보(Wally Karbo)와 아들인 데니스 스테쳐(Dennis Stecher)에게 클럽의 지분을 매각하도록 한다. 버네 가니에(Verne Gagne)는 아마추어 레슬링 챔피언 출신으로 프로 레슬러로 전향 후, DuMont 네트워크에 출연하면서 1950년대의 레슬링 스타로 떠오른다. 그는 NWA 월드 챔피언이 되겠다는 욕망이 있었으나 연맹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1957년 6월 14일에 에드와드 카펜티어(Edouard Carpentier)가 시카고에서 루 테즈를 꺽고 NWA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연맹은 심판의 오심을 이유삼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브레스카를 포함한 중부지역이 카펜티어를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이러자 카펜티어는 버네 가니에에게 타이틀을 넘겨주려 했고 연맹은 E.카펜티어를 챔피언으로 인정한다. 1959년에 데니스 스테쳐가 레슬링 클럽의 나머지 지분을 매각시키면서 버네 가니에와 월리 카르보가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 AWA의 창설 [1960년]



 

1960년에 연맹과 NWA 월드 챔피언쉽에 대한 협상이 결렬되자 버네 가니에와 월리 카르보는 연맹을 탈퇴하고 AWA(American Wrestling Association)를 창설한다. AWA는 당시 NWA 월드 챔피언이였던 팻 오'코너(Pat O'Connor)를 AWA 월드 챔피언으로 지명하고 일방적으로 버네 가니에와의 챔피언쉽 결정전(戰)을 지시했다. 하지만 NWA와 코너가 이를 무시하자 1960년 8월 16일에 버네 가니에가 공석이 된 챔피언쉽의 주인이 되었다. 프로 레슬링의 연출적인 면 보다는 스포츠적인 면을 중요시했던 버네 가니에는 기술 레슬링을 단체의 철학으로 삼고 AWA를 운영했다. 그는 레슬러 지망생들을 모아놓고 지역의 농장에서 직접 훈련 시키기도 했다.



 

프로 레슬러 생활을 병행했던 가니에는 진 스니츠키, 빌 밀러 프리츠 본 에릭, 닥터 X, 크러셔, 레이 스티븐스 등과 대립했으며 1981년에는 닉 복윙클(Nick Bockwinkel)에게 패해 월드 타이틀을 내주었다. 가니에는 레슬락(WrestleRock) 86에서 시크 아드난과 경기를 갖기 전까지 활동했으며 WWWF나 NWA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단체를 잘 이끌었다. 가니에와 카르보는 AWA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미니애폴리스뿐만 아니라 밀워키, 시카고, 아마하, 위니펙, 덴퍼, 솔트 레이크 시티, 라스 베거스, 샌 프란시스코등 중서부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 헐크 호건 [1982년-1983년]



 

1982년에 영화 록키(Rocky)3에 출연한바 있는 헐크 호건이 선역으로 큰 인기를 구사하면서 AWA의 흥행을 이끌게 된다. 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버네 가니에는 호건을 챔피언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술 레슬링을 강조하는 그로서는 쇼맨쉽과 파워 레슬링의 헐크 호건이 단체의 챔피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훗날 출시된 AWA DVD에 의하면 버네 가니에는 호건과 챔피언, 닉 복윙클의 대립이 흥행을 만들겠지만 그를 챔피언에 올리려는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경기는 두번의 판정 번복 끝에 복윙클의 타이틀 방어로 마무리 되었다. 1983년에 있었던 수퍼 선데이(Super Sunday)에서 호건이 또 한번의 핀폴(pinfall)을 얻어내지만 심판은 경기 도중 있었던 부주의한 행의를 빌미 삼아 호건의 실격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관중들뿐만 아니라 호건도 크게 실망했다. 호건은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킬 만큼 흥분하자 마이크를 잡고 그들을 진정 시켰다고 한다.

* WWF로 이적하는 선수들 [1983년]



 

북동부 지역의 프로모터, 빈스 맥마흔 주니어가 WWF(World Wrestling Federation)를 이끌고 1980년대에 들어 전국적인 확장을 하자 NWA의 영역 시스템과 기존 프로모터들은 위기에 처한다. 당시에는 지역간의 침범 불가는 물론, 단체의 선수를 몰래 빼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헐크 호건이 잠시 AWA를 떠난 기간에 빈스 맥마흔이 그에게 접근했고 1983년 12월에 호건이 WWF와 계약함으로써 AWA는 인재를 잃게 되었다. 1년뒤에 헐크 호건은 WWF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단체의 챔피언이 되었다. WWF는 돈과 명예를 약속하며 AWA와 NWA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AWA는 당시 아나운서였던 민진 오컬런드와 매니져, 바비 히난 그리고 아드리안 아도니스, 켄 파테라, 짐 번젤, 제시 벤츄라등의 선수들을 WWF에 빼앗겼다. NWA 역시 로디 파이퍼, 그렉 발렌타인, 브리스코 형제, 리키 스팀보트, 밥 오튼등의 선수를 잃는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던 버네 가니에 였기에 그는 그저 이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고 한다.

* 프로 레슬링 USA [1984년-1985년]



 

선수들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1984년에 핵심 선수를 주축으로 AWA는 성공적인 한해를 이끈다. 훌륭한 태그팀인 로드 워리어스, 그렉 가니에와 시크 아드난의 대립이 있었고 닉 복윙클, 레이 스티븐스, 더 크러셔, 딕 더 브루이저, 배론 본 라츠케, 매드 독 바흔, 래리 헤닉등이 활약했다. 빈스 맥마흔의 WWF에 대항하기 위해 AWA는 NWA 연맹 프로모터들과 연합을 결성한다. 짐 크로켓 프로모션, 미드-사우스 레슬링, 퍼시픽 노스웨스트 레슬링, WCCW, 콘티낸탈 레슬링 협회등이 모여 프로 레슬링 USA(Pro Wrestling USA)를 결성했다. AWA는 써전 슬러터와 밥 백런드 같은 정상급 선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WWF가 레슬매니아(Wrestlemania)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AWA의 관중 수들은 떨어져만 갔다. 월리 카르보가 가니에에게 나머지 지분을 넘기면서 가니에가 단독으로 단체를 운영하게 되었다. 1985년에 프로 레슬링 USA가 연합쇼인 수퍼 클래쉬(Super Clash)를 개최한다. 레슬매니아에 대항해 개최했던 본 쇼는 크게 성공했다. 성공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데이빗 크로켓(David Crokett)이 백스테이지에서 AWA 선수들과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자 가니에는 분개했고 단체간의 불신도 생기게 된다.

* 국제적인 교류



 

1985년에 AWA 프로그램인 프로 레슬링 USA가 ESPN을 통해 방송되기 시작한다. 이로서 AWA는 USA 네트워크의 WWF, TBS의 GCW와 같이 케이블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AWA 프로그램은 방송사에서 항상 뒷전이었다. ESPN에서 생방송이 있는 날이면 결방은 물론 이따금씩 예고 없이 시간이 변경 되기도 했다.

* 추락 [1986년-1991년]


AWA는 WWF와 NWA가 경쟁하며 메이저 단체로 거듭나고 있을 1986년과 1987년 사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네 가니에는 스캇 홀, 미드나잇 록커스(숀 마이클스, 마티 자네티), 베이더, 내스티 보이스, 매두사등의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버네 가니에는 제리 제럿이 운영하던 멤피스 지역의 CWA와 관계를 맺고 제리 로러(Jerry Lawler)를 새 챔피언으로 추대한다.



 

당시 챔피언은 커트 헤닉(Curt Hennig)이였고 제리 로러가 그를 꺽고 단체의 챔피언에 등극한다. 제리 로러는 AWA의 챔피언으로서 수퍼 클래쉬 3에서 WCCW의 챔피언, 케리 본 에릭과 대결했는데 심판의 판정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첫 PPV 쇼였고 최선을 다했지만 수퍼 클래쉬 3는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1989년에 AWA는 제리 로러의 타이틀을 박탈시키지만 로러는 타이틀을 갖고 그대로 테네시로 떠나 버렸다. 제리 로러는 PPV 출연료를 담보로 타이틀을 갖고 있었지만 버네 가니에는 비슷한 모양의 AWA 타이틀을 다시 제작해야만 했다.



 

1989년 2월에 래리 즈비스코(Larry Zbysko)가 18인 배틀-로얄에서 우승해 공석이었던 AWA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하지만 즈비스코가 버네 가니에의 사위였기에 단체를 가족 위주로 운영한다는 구설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즈비스코는 톰 젱크, 그렉 가니에, 와후 맥다니엘, 켄 파테라, 니키타 콜로프, 브래드 레인건스, 트루퍼 델 윌크스, 마사 사이토 같은 선수들과 대립했다. 1990년 2월에 일본 도쿄 돔에서 마사 사이토(Masa Saito)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주지만 1990년 열린 수퍼 클래쉬 4에서 다시 즈비스코가 챔피언이 되었다. 1989년 초에는 에릭 비숍(Eric Bischoff)이 단체의 행정 업무와 링 아나운서를 맡기도 했다.



 

1990년 가을이 되자 AWA는 재정부족으로 그 어떤 이벤트도 열지 못했다. 래리 즈비스코는 WCW로 이적했고 버네 가니에는 12월에 그의 타이틀을 박탈 시켰다. 1991년에 가니에는 최종적으로 단체의 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1991년 5월에 로체스터에서 1회의 이벤트를 더 열었지만 단체를 살리기에는 역부족 이였다. 단체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AWA는 ESPN을 통해 방송 되었고 헐크 호건의 영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발매되기도 했다.



 

훗날 발매된 AWA DVD에 출연했던 에릭 비숍에 의하면 AWA가 파산된 이유중 하나는 가니에가 소유하고 있던 미네통카호(Lake Minnetonka)의 법정 공방이 심화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미니애폴리스 시에서는 그의 호수를 공원에 환원하도록 지시했으나 가니에가 이에 불복, 법정 공방이 계속되면서 AWA를 운영할 재정이 바닦났다고 한다.



 

또한, 당시 60세 중반의 버네 가니에는 레슬링 비지니스의 현주소를 읽지 못했다. 그는 WWF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만화 같은 프로 레슬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흥행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단체 운영 철학을 바꾸지 않았다. 비록 AWA는 사라졌지만 단체가 남긴 유산은 현대 프로 레슬링의 훌륭한 자원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 참고: 위키백과 / 작성: TripleH [
tripleh16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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